오랜 옛날, 인류가 수렵과 채집을 하던 선사시대 때부터 고기는 아주 특별한 음식이었습니다.
너무나 맛있었지만, 구하기는 쉽지 않았죠.
사실 여자들이 채집해 온 열매와 씨앗들만으로도 뭐 버틸만 했습니다.
정 단백질이 부족하면 생선이나 벌레 같은 걸로 필수 영양소를 맞출 수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열동물의 붉은 고기가 먹고 싶었기 때문에,
부족내의 건장한 남자들은 목숨을 걸고 사냥에 나가 몇 날 며칠 허탕을 치는 비효율을 감수해 농경이 시작된 이후에도 이 집착은 사라지지 않아서, 고기는 권력과 특권을 투영하는 하나의 사치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가축을 기르더라도 젖이나 알 같은 부산물을 공급받거나 노동력을 얻기 위해서였지, 이걸 잡아서 먹어버리는 건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었거든요.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죠.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네 집 가 죽을 잡아먹었다가 다음 해 농사를 망치고, 부자들이 목초지를 만들기 위해 땅을 독식하면서 유랑민이 생겨났어요.
심지어 마땅한 가축이 없는 일부 사회에서는 사람끼리 잡아먹는 일도 드물지 않았고요.
고대 세계의 현자들은 공동체의 생산 역량을 보존하기 위해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강력한 안전장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먹어도 되는 것, 안 되는 것을 딱 정해서 지키도록 하자는 거였죠.
그리고 그 시대의 현자들이란 결국 제사를 주관하는 사제 계급으로, 이런 일종의 안전 수칙들은 무지한 백성들이 알아먹기 쉽게 종교에 녹아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의 주요 종교 종교 4대장 하면 이제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를 꼽죠.
그리고 그중 가장 큰 세력인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 종교, 공통의 조상인 유대교까지 합쳐서 아브라함계 종교라고 묶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이슬람교는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원조인 유대교는 돼지를 포함해서 이슬람교보다
더 까다롭고 광범위한 육식 제한이 있죠.
사실 돼지는 어떻게 보면 키우기 너무 쉬운 동물입니다.
먹이를 가리지 않고 웬만한 건 다 먹을 수 있는 데다가 사료를 고기로 전환하는 능력도 좋아서 포유류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효율적인 사기급 동물이에요.
하지만 유대인들의 활동 영역은 황량한 사막으로 인구 부양력이 높지 않은
척박한 곳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 돼지는 오히려 키우기 어려운 동물이죠.
돼지는 더우면 쓰러지는데 그늘이 없으니까 서늘한 우리를 따로 지어줘야 합니다.
가뜩이나 식량이 부족한데 사람이 먹을 음식을 나눠줘야 되고요.
그리고 돼지들은 물에서 뒹굴며 체온을 식혀야 하는데, 물이 부족하니까 더러운 오물에서 뒹굴어요.
그러면 어떻게 된다? 돼지를 기르면 기를수록 오히려
죽게 된다 거기다 불결한 사육 환경 때문에 전염병이 창궐한다.
이런 이유로 유대인들을 비롯한 이 지역 사람들은 소나 양 같은 동물들을 선호했습니다.
노동력과 젖, 털이나 가죽을 제공하고, 인간과 음식을 공유하지도 않으며, 건조한 지역에서도 잘 버티는 그런 동물들 말이죠.
돼지를 기른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고, 실제로도 기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유대교는
돼지 기르는 걸 콕 집어서 아예 금지시켜버렸습니다.
가만히 놔둬도 아무도 안 할 짓인데, 왜 굳이 공식적으로 못 박아가면서까지 금지를 때렸을까요? 의외로 이런 환경에서도 돼지를 기르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도 돼지가 맛있다는 거 알고 있었거든요.
사실 아득한 옛날, 기원전 50세기쯤에는 이 지역도 수 풀이 우거진 녹지였습니다.
당연히 돼지를 도입하는 데 문제가 없었고, 실제로도 잘만 길러서 맛있게 먹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역사가 긴 만큼 농업의 역사도 남들보다 수천 년 오래됐죠.
그래서 일찍이 환경이 황폐화되기 시작했고, 돼지 키우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원래는 돼지를 잘 먹었는데 점점 더 못 먹게 됐다는 거예요.
구약 성경이 쓰여지던 시대에는 이미 사막화가 완료된 시점, 돼지 맛을 알지만 더 이상 먹기가 힘든 그런 슬픈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나마 물이 좀 남아 있는, 숲이 좀 남아 있는 일부 지역이나, 큰 돈 들여 제반 조건을 마련할 수 있는
부잣집에서 꾸역꾸역 돼지를 길렀던 거죠.
돼지가 일종의 특권이 되고, 사회의 불만과 양극화를 만드는 불안 요소로 자리 잡은 사회 그렇기 이걸 종교의 이름으로 딱 금지시켜서 계층을 불문하고 못 먹게 만들어버린 겁니다.
땅과 물이 낭비되니까 자제해라 하면 소수의 특권층이 또 기를 거 아니에요 아예 먹으면 부정해진다고 딱 박아버리는 게
가장 평등하고 최선이었던 거예요. 이런 유대교가 로마로 가서 기독교를 낳고, 이후에는 아라비아로 가 이슬람교를 낳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돼지고기 맛있게 잘만 먹고, 이슬람교는 여전히 돼지고기 못 먹게 하죠.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허용할 만하니까 허용하고, 금지해야 하니까 금지한 겁니다.
기독교가 발생한 로마 제국은 지중해 연안의 해안 도시들과 유럽의 삼림지대를 지배했습니다.
이 사람들한테 돼지 먹지 말라고 했으며,
지금의 기독교는 없었을 거예요. 반면 이슬람교는 건조한 아라비아 반도에서 발생했는데, 이 사람들한테는 돼지 먹지 말라는 교리가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을 테고요.
실제로 초기 이슬람교는 기존의 로마의 영향권이었던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레반트 지역을 빛의 속도로 빼앗으며 급속하게 세력을 키웠는데요.
이 지역들은 이슬람의 발원지인 아라비아 반도와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은
건조 지역이었습니다. 당연히 이슬람의 교리를 받아들이기도 쉬웠고, 이슬람의 지배를 환영하는 경우도 많았죠.
하지만 비슷한 시기 정복당한 이베리아 반도는 수백 년간 싸워서 끝끝내 이슬람을 몰아냈습니다.
지금도 이베리코 같은 돼지 품종으로 하몬 같은 돼지고기 요리로 유명한 곳인데, 이런 사람들한테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으니 당연히 들고 일어날 수밖에요.
한편, 인도의 주류 종교인 힌두교에서는 소고기를 못 먹게 금지합니다.
힌두교는 인도, 아리아 계통의 종교로 불교와는 사촌지간인데요.
불교의 경우는 심지어 모든 동물에 대한 살생을 금하는 걸로 유명하고, 마찬가지로 인도에서 등장한 많은 종교들의 살생을 금 하는 교리가 있으니까 이쪽 계통 종교들의 공통적인 경향이라고 볼.
그래서 힌두교도 불교만큼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육식을 그다지 권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중에서도, 특히 소만은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는 최고 존엄으로 취급해서 신성한 대상, 숭배의 대상이라고 가르치는 게 특이점이죠.
때문에 돼지를 아예 부정한 동물로 못 박아서 퇴출시켜버린 이슬람 세계와는 달리, 인도에서는 소들이 사방에서 팔자 좋게 돌아다녀요.
사실 인도인들이, 힌두교가 처음부터 소를 숭배하고 보호했던 것은 아닙니다.
인도 문화의 실질적인 조상은 기원전 15세기경 북쪽으로부터 침입해 온 아리아인 아리아인의 일파가 서쪽으로 가
유럽인이 되고, 동남쪽으로 가서 북인도인이 된 거거든요.
아리아인들은 소치고, 양치고, 말 타고 다니면서 육식에 거리낌이 없는 전사적인 종족이었습니다.
때문에 인도에 처음 진입할 시기, 아리아인들은 자기네들 전통에 따라 소고기를 즐겨 먹었고, 제사 한 번 올릴 때마다 소를 몇 백 마리씩 죽이는 그런 문화를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똑같은 아리아인의 후손인 유럽인들은
유대교의 율법을 바꿔서 새로운 종교를 만들면서까지 모든 육식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갔고, 인도인들은 불 유교부터 흰두교까지 이어오며 육식을 자제하는 방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유대교의 돼지와 마찬가지로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는 안전장치였죠.
인더스 강 유역의 아리아인들이 나타나던 시기, 인더스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처럼 기후 변화와 지력의 고갈로 인해 일찍이 쇠퇴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지배계층이 된 아리아인들은 얼마 남지 않은 초지의 소 풀어 키웠어요.
새로운 지배 계층이 된 아리아인들은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개 카스트를 만들어서 원주민들을 지배했는데요 그중 최고의 계급은 브라만으로, 당연히 아리아인들의 차지였습니다.
아리아인의 종교 전통에 따라 소를 도축하고, 먹고, 제사에 올리는 행위 역시 브라만들의 역할이자 특권이었죠.
북인도의 환경은 더욱 빠르게 황폐화되고 있었습니다.
인구는 늘어나는 반면, 키울 초지는 점점 줄어들었고, 소와 경작지를 독점하는 브라만 계층에 대한 불만이 커져갔죠.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게 바로 불교.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고, 살생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불교는 당연하게도 엄청난 속도로 세를 불리며
인도인들에게 퍼졌습니다. 그리고 수세에 몰린 브라만들은 기존의 교류를 진화시켜 이에 대응하기로 했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게 바로 힌두교입니다.
당시 기준으로 불교의 너무 어렵고 빡셌거든요.
하지만 불안한 기호를 수정해서 형성된 힌두교는 훨씬 직관적이었어요.
심지어 힌두교는 아예 석가모니를 힌두교의 화신 중 하나로 편입시키는 등, 불교의 교리를 흡수해 버리는 전략으로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아 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소를 죽이거나 먹으면 안 된다는 교리도 이런 측면에서 형성된 것으로, 모든 동물의 생명이 소중하긴 하지만, 특히나 소는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하다고 조건을 걸어서, 힌두교에서 가장 신성한 동물로 숭배를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격상시켜버린 거였죠.
브라만들은 소를 도축하고 바치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 소를 보호하는 계급이 됐고요.
실제로 소를 소중히 여기고 먹지 못하게 하는 교리는
인도인들에게 이로운 점이 많았습니다.
농민들은 가뭄이 일어나도 어떻게든 소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버텼고, 유럽과는 달리 돈 많은 부자들도 소를 기르기 위해 토지에 울타리를 치지 않았어요.
덕분에 웬만큼 가난한 농민들이라도 작은 소 한 마리, 작은 땅 하나씩은 가질 수 있었고, 이건 사회의 밑바닥을 지탱하며 안정성을 유지하는 최고의 안전장치였죠.
지금도 인도에는 소 보호소가 많고, 소
도축하는 걸 법적으로 금지하는 주들도 많습니다.
2022년 현재 인도 인구가 약 14억 명 정도인데, 소가 3억 마리로 세계 최대 규모예요.
브라질이나 미국 같은 나라들은 인도만큼은 아니지만 소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기업적으로 사육하는 소들은 고기를 얻기 위해, 젖을 얻기 위해 개량된 녀석들로, 엄청나게 많은 토지와 물, 식량을 들여 키워지며, 대부분 3살이 되기 전에 빠르게 도축돼요.
반면 인도에서 소는 사람과 함께 지내며 알아서 살아갑니다.
마을 길거리에 돌아다니면서 적당히 아무거나 주어먹고도 10년 이상을 장수하는 강인한 녀석들로서, 가난한 농가의 유일한 재산이자 노동력과 젖을 제공하는 만능 가축이죠.
사람은 고기를 좋아합니다. 건강상의 이유나 특별한 신념을 가진 경우가 아니라면, 본능적으로 이게 디폴트 값이에요.
인간은 잡식 동물인데, 잡식 동물은 생물학적으로 육식 동물에 가까운 소화기관을 가지고 있거든요.
인체 구성에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동물성 단백질과 높은 열량을 가진 지방을 함유했기 때문에, 사실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에게 있어 가장 고품질의 영양 섭취원이 바로 고기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지구상에는 특정한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수십억 명이나 살아가고 있죠.
그리고 이런 현상들은 대부분 고대로부터 전해진 안전 수칙으로서 신앙의 형태로 지켜지고
우리도 언젠가 고대인들처럼 환경과 사회의 막다른 길에 들어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의 현자들처럼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해법을 찾아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