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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수준을 바꿔놓고 꿈을 이루어준 사람 히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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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댓글 0건 조회 294회 작성일 23-10-1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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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여 년 대한민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외국인이라고 하면 누가 있을까요? 저는 뭐니뭐니 해도 이분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최고의 경력과 실력을 가지고 우리를 관찰하고 파악해서 우리의 강점은 끌어올리고 단점을 보완하면서 기적 같은 성과를 낸 솔직히 저는 존경하고 출항해서 약간 길에서 만나면 길에서 절할 것 같아 엎드려서 위인전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

경제를 비롯해서 한국의 많은 것들이 정체돼 있는 것 같다고들 하는 시기인데요. 
당시의 상황이 지금과는 많이 다르긴 하지만 역사책을 들춰보는 거랑 비슷한 의미에서요. 
이 인물의 이야기가 그저 축구에만 적용될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준비해 봤습니다. 
그는 무엇이 달랐을 그리고 어떻게 우리를 바꿔놓을 수 있었을까? 이번 주제는요 한국의 명예 국민 1호 버스이딩크입니다.

뒤늦게 뛰어든 월드컵 유치전 그리고 어렵게 성사된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당시에 우리는 절박했죠. 
특히 일본과 대회를 공동으로 여니까 적어도 일본보다 못하면 안 된다는 것도 있었고. 
하지만 현실은 암울했어요. 개최지 선정 이후에 치러진 프랑스 월드컵에서 처참한 성적을 남겼으니까. 
대회는 점차 다가오는데 16강 진출은 물론이고 그전까지 월드컵 본선에 5번 나가서 이겨본 경험조차 없었으니

영승이었어요 영승 한번. 하지만 바닥을 쳤을 때 오히려 뭔가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된다고 해야 할까 축구협회가 최고의 경험을 가진 감독 영입을 위해서 나섰습니다. 
네덜란드의 거스 히딩크가 그중 한 명이었죠. 
전 세계에서 10명도 안 되는 유러피안 트랩을 달성한 감독이자 바로 직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이끌고 4강에 들었고 동시에 우리에게는 0대5 참패를 안겼던 바로 그 사람

축구협회 관계자가 네덜란드로 날아가서 영입을 제안했을 때 히딩크가 그랬다고 하죠. 
한국 팀에 가겠다는 생각은 솔직히 없었는데 그저 멀리서 왔으니까 조언이라도 해주자 싶어. 
그래서 뭐라 그랬냐면 한국 너희들이 잘하려면 유럽 강팀들과 실전 경험을 계속 쌓아야 한다. 
그런데 뭐 한국이 붙잡고 한다고 붙어주는 상황이 아니었죠. 
그리고 프로리그의 희생이 필요하다. 장기 합숙 훈련을 하면서 조직력을 쌓아야 한다는

경기당 100만 달러가 넘는 외국팀 섭외비는 물론이고요. 
유럽 전지훈련, 외국 전지훈련에 막대한 돈을 써야 한다. 
동시에 k리그에 엄청난 희생도 필요하다. 
상식적으로는 실현이 불가능해 보이는 충고를 한 거죠. 
하지만 한국 측에서 열흘도 안 돼서 이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나오니까 깜짝 놀란 히딩크가 국대 감독을 맡기로 합니다. 
언거열이었을까

그러면 히딩크는 어떤 감독이었느냐 독특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었. 
처음부터 프로축구 선수로 출발한 게 아니었고요. 
스포츠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지도자 자격증을 딴 다음에 지역팀 코치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감독이 선수도 모자라고 당신 나이도 어리니까 그냥 코치만 하지 말고 선수 겸 코치로 뛰어보라더래.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프로팀 선수로 뛰기 시작하

선수를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온 거죠. 
참고로 그래서인지 히딩크가 할 줄 아는 스포츠가 되게 많죠. 
코칭 능력도 여러 종목에 한국에 와서도 이게 무릎 수술하고 난 이후인데요. 
젊은 기자들이랑 북한산인가 등반을 했는데 당시에 많은 기자들이 그랬 히딩크 감독이 나이도 있고 덩치도 있고 수술도 한 직후고 해서 이렇게 무시했는데 산을 올라가는 게 엄청 빠르더라고요. 
기자들한테 막 젊은 사람들이 이것도 빨리 못 오냐고 막 뭐라고 해서 거의 막 날아가듯이 막 뛰어올라갔을 때

아니 저 사람이 저게 가능한가 아무튼 근데 지금도 그렇지만 유럽에는 워낙 많은 클럽들이 그래서 코치겸 선수라고 해도 큰 클럽도 아니고 조급도 변변찮으니까 저녁에는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체육교사 자격증 받으려고 공부도 동시에 했었대. 
그렇게 해서 아침에는 유소년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프로 선수로 훈련을 하고 저녁에는 또 체육교사가 되려고 야간 대학을 다니

그러니까 히딩크 감독의 경력이 시작부터 화려했던 건 아니었죠. 
그러다가 네덜란드 리그 정상의 프로 psba인 토번에서 선수로 스카웃이 됩니다. 
엄청 신났겠지 하지만 이 정상급 팀에서 히딩크는 별다른 기회를 얻지도 잡지도 못했고요. 
다시 원래 팀으로 돌아와서 코치를 하다가 또 엔트리가 모자라니까 선수로 동시에 뛰고 그러다가 미국 리그 진출 기회를 얻어서 여름에는 미국에서 여름이 지나면 다시 네덜란드 리그에서 뛰는 생활을 2년 정도 합니다.

이때도 네덜란드에서 뛸 때는 체육교사로도 일을 하고요. 
비행 청소년들 모아놓은 학교 장애 학생들 가르치는 특수학교에서 가르쳤다고 하죠. 
그리고 훗날 회고를 하기를 이 시절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훗날 프로팀에서 톡톡 튀는 스타 플레이어들 코칭에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애들이 말을 얼마나 안 들어 또 비행 청소년들을 모아놨으니까 막 해가지고 어르고 달래고 막 이렇게 압박도 하고 했는데 프로팀에서 또 국대에서 막 스포츠 스타들이 모여 있는데 그 사람들을 심리전으로 막

압박하고 어르고 달래고 이렇게 막 끌어올리고 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거죠. 
근데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은 이렇게 네덜란드에서도 바쁜데 유럽 클럽 디시즌에 미국까지 가서 축구를 한 미국에서 돈을 더 많이 줘서였을까 아니었어요. 
돈은 네덜란드보다 미국이 적게 주는데 그냥 미국에 가보고 싶더래. 
배웠던 영어도 한번 실생활에서 써보고 싶고.

피딩크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난 지금도 돈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 
미국으로 간 건 미국에서 축구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고 돈은 그다음 문제였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즐겁지 않은 일을 하기는 싫었. 
그래서 나는 어느 팀 감독을 맡더라도 항상 내게 주어진 여건부터 살핀다. 
그래서 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그제서야 계약 조건을 협상한다. 
돈은 항상

보수적인 것이다. 아마 히딩크가 훗날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오게 된 것도 이런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렇게 경력들을 거치면서 연봉 협상을 되게 잘하는 감독으로도 유명했어요. 
또 한국 팀에 오기 직전에 클럽 팀들이어서 이력이 좀 꼬여서 한국에 오게 됐다는 얘기들도 있죠. 
하지만 16강을 꼭 가야 한다면서도 본선에서는 1승도 못 해본, 그것도 낯선 아시아 팀에 가는 결정이 쉬웠겠어요? 여기서 실패하면 완전히 경력이 끝나버릴 수도 있는 거잖아. 

아마 히딩크 자신의 말대로 뭔가가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마 본인이 얘기한 대로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조건은 다 마련하겠다 이렇게 약속한 한국에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판단이 나름 있었기 때문이었겠죠.

되는 사람이 왜 한국에 오는 거지? 유럽 챔피언스 리그도 우승을 해봤고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고 4강까지도 가봤던 인물이고 정말 모든 감독으로서 모든 경험체의 완전체였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에 협상을 맡았던 축구협회 관계자가 히딩크 당신이 안 온다고 하면 나는 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할 만큼 절박하게 매달린 적도 있었을 거예요. 
이 관계자가 축구협회에 파견된 정몽준 당시 축구협회장 내 회사 직원이었거든요. 
계약을 못하면 돌아올 생각을 말라고 그랬대. 
어떤 느낌인지 알겠지? 필사적이었던 거지. 
회사 약간 총수가 계약 못하면 들어올 생각하지 마세요. 
이렇게 얘기하면 제발 뭐 해 주세요.

그래서 나이지리아 대표팀 등등의 강팀들도 영입 제안들이 있었는데 아주 이렇게 적극적이지 않았었고 한국 팀 이렇게 적극적인 나라가 있었겠어 월드컵을 개최했지. 
당연히 16강 가야 된다는 국민의 여망이 있지. 
전 월드컵에서 참패했지. 그리고 이렇게 오너가 막 시키지. 
당연히 막 매달렸을 거 아니에요 아무튼 다시 히딩크의 선수 시절 얘기로 돌아와서 그렇게 선수 생활을 하다가 코치를 시작한 히딩크는 ps 메인토본에서 코치직을 얻게 되고 어느 날 감독이 구단과 마찰 속에 물러나니까 임시 감독직을 수락합니다.

이건 하늘이 준 기회다 무조건 이 기회를 잡아야겠다면서 선수들과 씨름을 했다고 막 그랬대. 
선수들한테 니들은 잘했는데 감독만 못해서 감독이 날아간 것 같냐? 아니다. 
니들은 여러 명이고 감독은 한 명이니까 니들을 다 자를 수가 없어서 감독이 잘린 거 아니겠냐 니들 잘할 수 있냐 약간 이렇게 나왔대. 
기싸움을 엄청 잘했다고. 그렇게 해서 정식 감독이 되고 유럽피안 트래블을 달성하고 우수한 성적을 연이어 거두고

연봉이 프로팀보다 적은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에 도전해서 한국팀을 상대하고 월드컵 4강의 성적도 냈던 거죠. 
참고로 98 월드컵에서 히딩크가 상대팀이었던 한국 팀을 보면서는 그랬대요. 
기술적으로는 괜 조직력에 문제가 있다 당시에. 
그런데 우리는 어땠냐면 스스로를 전혀 그렇게 보지 못했었죠. 
우리는 조직력과 정신력이 하지만 기술과 체력이 좀 부족하다 늘 이렇게 자평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이런 과정을 거쳐

한국 대표팀이 아주 험블한 상황이던 2001년 초 그 어느 때보다 빼어난 경력을 지닌 감독 히딩크가 드디어 한국에 들어옵니다.

당시에 한국은 히딩크한테 엄청난 기대를 했죠. 
정몽준 당시 회장을 비롯한 축구협회 관계자들이 한국에 온 히딩크한테 그랬대요. 
모든 훈련을 유럽식으로 하겠 따르겠다.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돼 있다. 
우리는 시도조차 한 적이 없으니까 당신 생각대로 해보. 
많은 저항을 받겠지만 우리가 막아줄 거다. 
여기까지만 들으면요.

그렇게 해서 잘 됐던 거구나 싶은데 축구협회 수뇌부 일부와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모든 미디어와 당시에 많은 축구 팬들이 그렇게 오래 기다려주지를 못했습니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바뀌려면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강점과 약점인지 어떤 것이 이 팀과 조직의 자산인지 등등 관찰에 따른 발견이 필요하고요. 
그 이후에는 과감한 실행이 필요하다고 하죠. 
히딩크는 우리한테서 무얼 발견하고 어떻게 움직였을까? 우선 히딩크는요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한국팀 경기 비디오 테이프를 30개 넘게 보고요. 
해외에서 벌어진 경

직접 가서 지켜봤다고 하죠. 그때 뭐 유튜브 같은 게 있을 때도 아니니까요. 
비디오 테이프 편집해서 돌려서 보는 거죠. 
그리고 연초부터 소집된 대표팀 선수들을 관찰하면서 분명한 단점 한 가지를 찾아냈다고 해요. 
일단 가장 먼저 보이는 단점이 체력이 부족하다는 거였. 
다들 그때 체력이 부족하다고 하니까 근데 이게 뭔 소리야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다들 우리가 막 되게 열심히 뛴다고 했었거든.

히딩크의 얘기는 이랬어요. 한국은 빠른 템포의 경기를 하는데 그게 경기 막판까지 지속이 안 된다. 
체력이 부족해서 그래서 경기 후반에는 집중력도 정신력도 떨어지고 늘릴 수밖에 없다. 
골 후반의 방법. 근데 이 체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그전까지는 거의 전혀 나오지 않는 진단이었어요. 
오히려 반대 얘기가 많았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체력은 좋은데 기술이 부족하다. 
우리가 체격이 밀려서 큰 체격의 선수들을 뽑아야 된다 막 이랬어요. 
그래서 그전에는 일부 감독들이 체격이 큰 선수들 위주로 뽑았었거든.

물론 그러면서 장점도 꼽긴 했었죠. 한국 선수들은 기술이 좋은 편이다. 
뭐 이런 평가를 내놓으니까 한국에서는 또 이게 또 뭔 소리야 오잉 하는 반응이 나왔죠. 
기술이 좋은 건 뭐 남미나 유럽 선수들 얘기 아니야 우리가 기술이 좋아 근데 히딩크의 얘기는 이랬어요. 
보통의 유럽 선수들과 달리 한국 선수들은 양발을 모두 사용한 그래서 어느 포지션에 있는 선수든 좌우 어느 쪽에서도 역할을 수행할 수 있

훗날 얘기할 멀티 플레이어 육성에 장점이 있다는 얘기였죠. 
물론 이것 때문에 나중에 또 욕을 엄청 먹긴 했지만요. 
뒤에서 다시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히딩크의 관찰은 계속 이어집니다. 
옷차림과 습관 밥 먹는 문화까지 왜 밥 먹는 분위기를 보면 그 팀의 분위기도 꽤 알 수 있다는 게 히딩크의 생각이었다고 하는데요. 
한국 사람들 스스로는 한국인들 자기네들을 두고 어떻게 보면 말을 잘 듣고

통일이 잘 된다고들 하는데 자기가 보니까 꼭 그렇지는 않더라. 
규율이 있어야 할 때는 없고 실력으로만 부딪혀야 할 자리에서는 또 위아래 따지는 식으로 쓸데없이 규율을 맞추는 좀 이상한 규율일 때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팀으로서 단체로 움직일 때는 규율을 엄하게 따졌죠. 
가령 국가대표팀이니까 자부심을 가지라면서 이동할 때부터 복장을 통일시키고 옷 색깔까지 맞추게 하고요. 
외출할 때는 반바지를 절대 못 입게 하

좀 의외죠 유럽에서 왔으니까 굉장히 자유로울 것 같았는데 이런 면에서는 의외였죠. 
또 팀 분위기가 드러난다는 식사 시간에는 어땠느냐 식사 시작과 마치는 시간을 맞춘다. 
그전에는 선수들이 자유롭게 와서 각자 밥 먹고 이렇게 들어가고 막 했었대. 
그런데 같은 시간에 와서 밥 먹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라는 거지. 
이거 뭐야 근데 약간 약간 그런 느낌이지. 
왜 그랬냐면 이건 단체 활동의 일부다. 
그냥 밥 먹는 게 아니라 팀 전체가 움직이는 시간이니까 규율이 있어야 한다는 거.

당연히 식사 시간에 핸드폰도 못 쓰게 하고 일부러 식사 시간에 그랬대. 
기술 분석관이었나 외국인 스탭이 히딩크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면서 식사 시간에 전화 바꿔준 거야. 
그랬더니 불같이 화를 내면서 이게 단체 행동하는 시간에 왜 전화를 바꿔주냐 화를 막 냈대. 
다 같이 움직이는데 무슨 전화를 받냐 그러니까 감독부터 솔선수범을 해서 다들 쫄게 만든 거죠. 
못 쓰게 전화. 그리고 밥을 먹는 동안에는요

한국 선수들은 고참들 따로 어린 선수들 따로 밥을 먹으니까 교류도 적 후배가 선배한테 말을 붙이는 것도 다가가기도 힘들다고 하면서 일부러 섞어 앉아서 먹으라고 했다고 하죠. 
서로 그냥 이름 부르게 하고 존댓말이 아니라 그냥 이름 불러라 했다. 
그래서 막 영보야 밥 먹자 이런 콘텐츠가 거기서 나오는 거지. 
그러니까 훈련 때나 실전을 치를 때는 선후배 같은 거 따지지 말아라. 
하지만 단체로 경기

밖에서 움직일 때는 쓸데없는 데서 기강을 잡지는 말라는 거지. 
그게 팀웍을 높이는 게 아니라면서요 그리고 히딩크는 무엇보다도요 선수들을 과거와 다르게 관찰을 했어요. 
이게 무슨 얘기냐 기존에 왜 대표팀 붙박이 멤버들이 있을 거 아니에 스타 플레이어들 당연히 이 사람은 들어갈 거라고 예상됐던 고참 선수 리스트 같은 건 철저하게 무시했죠.

당신들이 여태껏 정해놓았던 기준이 맞는 거라고 생각하냐 아니다 한국 수준에 맞는 거 아니다 나는 나의 높은 스탠다드로 내가 직접 선수를 관찰하고 선택한다 내가 보는 시야가 다르다는 거죠. 
약간 기분 나쁠 수 있지만 사실이잖아. 
그 니네가 그냥 동네에서 이렇게 보는 거랑 월드클래스에서 보는 거랑 다르다 그 기준에 맞춰서 뽑으면 될 일이 없다 뭐 이런 거죠.

축구협회 소위 고인물들이 대표팀 소집 명단을 정할 때 협의하자고 하면요 그냥 자기가 쓱 먼저 명단 발표해버리고 스타 선수들 길들이기도 계속했어요. 
실력이 명성에 따라주지 않는다면서 계속 자극을 하고 그런 철학이 있어 진정한 스타라면 이렇게 내가 자극할 때도 꺾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극을 받으면 더 강해진다는 거였죠. 
항상 굴려가던 안정환 홍명보 황선홍 같은 스타들을 안 부르기도 했으니까.

as 로마랑 경기를 하는 경기를 세레에선 리그에서 하고 있었는데 히딩크 감독이 보러 왔어요. 
온다는 걸 제가 들었고 그다음에 그냥 가셨어요. 
운동장에 잠깐만 얘기하고 그냥 갔어요. 
보통 대부분 그러지 않거든요. 오면 꼭 선수랑 이야기하고 식사하고 모든 걸 물어보고 대화를 나누고 갑니다.

왜 그냥 갔을까라는 생각도 저는 그때 그랬어요. 
아 이제 월드컵은 못 갈 수도 있겠구나.

저는 사실은 처음에는 득점왕을 하고 했기 때문에 당연히 뽑힐 줄 알았어요. 
근데 한동안 못 들어갔습니다. 대표팀에 한동안 합류를 못 했어요. 
안 부르시더라고. 다음번에는 좀 뽑힐 줄 알았는데 또 안 뽑습니다. 
계속 그런 게 한 세네 번 정도가 있었어요.

본인들도 당황했대. 왜 안 부르지 그렇게 막 이렇게 압박만 한 게 아니라 뭐가 부족하다라고 집어주기도 했대요. 
이런 걸 강화해야 된다 그러면서도 히딩크 사단이 직접 관찰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선수들은 쭉 눈치를 안 보고 불러들여 그러니까 팬들한테는 익숙하지 않았던 새로운 선수들이 계속 수혈됐죠. 
박지성 김남일 이을용 최진철 등등.

감은 그렇게 크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뭐 내가 여기에 꼭 될 거라는 생각을 갖지는 않았었으니까요. 
뭐 꾀를 부릴래야 부릴 수가 없었죠. 
아무나 월드컵을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은 와닿지 않지만 이게 어느 정도 강도였냐면요 그전 월드컵에서는 찾아보니까 개막을 1년 정도를 앞두고선 부상 선수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엔트리에 큰 변화가 없었거든요. 
젊은 신예들을 하나둘 등장시키는 정도 베스트 일레븐도 2배수 정도 안에서 정해졌어요. 
그런데 히딩크 감독 체제에서는 어땠느냐 취임 1년 그러니까 대회 다섯 달 전까지 무려 59명을 소집해서 계속 번갈아가면서 테스트를 했어요. 
명단이 계속 바뀌는 거지.

대표팀에서는 한 번 스타가 되면 웬만하면 잘 빠지지가 않아요. 
한 번 되면 그러니까 실력이 누군가가 뛰어나도 이름 있는 선수가 있으면 심지어 더 축구를 잘해도 무명의 선수가 이름 있는 선수가 선발로 나가는 그런 문화가 없지 않았어요 사실은. 
그런데 이제 히든 감독님이 처음에 오셔서 어 저분은 동일하게 기회를 주고 정말 실력 위주로 선수를 선발해서 쓰려고 하시는구나 그런 느낌을 선수들이 받았어요. 
저도 받았고

당시에 사람들이 어땠느냐 역시 명장이 다르다 저렇게 선수들을 폭넓게 봐야 돼 전혀 아니었죠. 
사람들은 진짜 난리였어요. 아니 왜 무슨 멀티 플레이어를 키운다면서 엔트리 불안정하게 가져가냐 잘하는 선수를 써야지 왜 쟤네를 뽑냐 실험만 하다가 망할 거냐 차라리 이렇게 성적이 안 나오는데 진득하게 사람을 그냥 박아두고 계속 경험을 쌓게 하면 적응이라도 할 텐데 그러니까 발전이 없는 거 아니냐 등등 진짜 엄청 뭐라고 했어요. 
막 신문 1면에 계속 나오고

저는 그때 당시만 해도 신경을 전혀 안 썼어요. 
대표팀에 대한 그런 게 마음이 떠나 있는 상태였으니까요. 
그동안 뭐 94년, 98년 앞두고 대표팀 들어갔었지만은 23명 안에 들지 못하고 관중석에서 보면서 또 그냥 또

나 또 아픔 겪기 싫다 그래서 저 아직도 기억나요. 
감독님한테 저 안 들어가겠다고 내가 왜 거기 들어가서 왜 또 들러리만 해야 되느냐

그리고 동시에 히딩크는요 한국팀이 폐쇄성을 벗어야 한다고 관찰하고 진단했어요. 
월드컵을 앞두고 해볼 만한 상대랑 경기를 치르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강력한 유럽 남미 등지의 상대팀과 경기를 해서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 스스로 성장하는 걸 느끼고 자신감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죠. 
그래서 부임 초기에 노르웨이랑 경기할 때

덩치 큰 상대팀 선수들 앞에서 한국 선수들이 위축되는 걸 보고 감독은 오히려 좀 좋아했대. 
옳커니 좋은 경험을 했다 싶더래. 우리 선수들이 이럴 때 쪼는구나 알았다. 
그러고 나서 체격이 좋고 실력이 좋은 유럽 팀들 그런 팀들을 피해갔느냐 아니죠. 
오히려 일부러 더 붙었어요. 그리고 나서 바로 결과가 좋았느냐 역시 아니

대회를 1년 앞두고 프랑스와의 a매치에서 0대5로 참패를 하고 체코와의 평가전에서 또 0대5로 참패를 하고 별명이 그때 5 대 0이라고 붙었. 
조롱하는 거지. 나중에 히딩크가 그래 내 별명이 있었는데 뭐지? 희동구여 뭐 이렇게 아 그거 말고 오대영 있잖아. 
오대형 자기가 일부러 막 그 얘기를 막 계속 끄집어내 사람들을 민망하게. 
그때 니들이 나한테 뭐라고 했더라 뭐 5대0

뭐 그런 솔직하게 해야지. 약간 이런 식으로 나오.

동구

그리고 2001년이 지나고 2002년에 들어서도 미국한테 지고 코스타리카한테 지고 우르과이한테 지고 더 난리가 났죠. 
엔트리 확정해라 이름 없는 선수 쓰지 마라 등등.

친구들이 하는 터치 그다음에 그 친구들이 볼을 잡는 트래핑하는 위치 타이밍 일 제가 그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터치였어요. 
딱 보면 볼을 터치할 때 이 안에서 터치를 해야 돼요. 
제가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선수들은 다 이 안에서 터치를 했어요. 
여기서 하는 게 아니라 터치를 여기서 하는 거예요. 
여기서 터치하든가 이 타이밍이 아니면 이 타이밍에.

그래서 제가 처음으로 상대를 전혀 읽을 수가 없는 거예요. 
수비를 하면서 약간 절망감 같은 걸 느꼈어요. 
이게 뭐지?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어땠느냐 자신이 발견한 문제점 그걸 개선하는 길을 가던 길을 계속 갔어요. 
한국 대표팀이 히딩크 이전에 어떤 선수로 뭘 어찌 됐든 한국 사람들이 뭘 하든 간에 자신의 관찰에 따른 선수 선발을 계속하면서요. 
어떤 선수가 강팀과의 경기에 맞는지 계속해서 찾아나갔죠. 
사람들이 뭘 하든 본선에서는 강팀과 붙을 테니까 말이 쉬운데 그래

5대5를 질 때는 두려움이 많이 앞섰죠. 
예전같이 또 똑같이 그렇게 하고 나는 은퇴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너무 많으니까 그래서 감독님한테 한번 슬쩍 한번 여쭤봤었죠. 
감독님 이게 가능할까요? 16강이라는 게 첫 승이라는 게 이대로 해도 되나요? 이렇게 질문을 한번 드렸는데 감독님 말씀이 강한 상대랑 계속 해봐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이 2002년 월드컵의 결과가 아니고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아무런 그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죠.

좀 놀랐죠. 사실

또 이렇게 지는 와중에 자신이 발견했던 한국의 가장 큰 약점 체력 보강을 위한 파워 프로그램 중요한 평가전은 물론이고요. 
월드컵 직전까지 계속 돌렸어요. 사람들은 이것도 엄청 뭐라고 했죠 왜 중요한 경기 전까지 힘들게 파워 프로그램을 돌려서 경기에 지게 만드냐는 거 아니 그렇잖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중요한 경기가 있는데 그 앞두고도 계속 체력 훈련을 돌리니까 체력 훈련이 뭐 이렇게 간단한 보강 훈련이 아니라 진짜 바닥까지 지칠 때까지 막 밀어붙이는

왜 경기 앞두고 힘을 빼지? 지쳐서 지는 거 아니야 이런 얘기들이 계속 나왔죠.

횟수를 많이 뛰면 아주 잘 뛰는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아주 열심히 뛴 거죠. 열심히 뛰어댕긴 거죠. 
굉장히 힘들게. 근데 목적은 다른 데에 있었죠. 
황선홍이라는 선수가 있으면 이 선수가 전반에 내면 몇 분까지 소화를 맥스로 할 수 있을까 이 판단을 하신 것 같아요. 
황선홍은 70분 나머지 한 20분은 안정환이 채우고

안정환이가 70분 나머지 20분은 홍선영이 채우고 이런 식으로 모든 포지션의 조각을 체력적으로 다 맞추신 것 같아요.

동시에 강팀과의 경기도 흔들림 없이 계속 진행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요 4년 전에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 대표팀이 98년 상반기에 치른 경기 상대 중에 7번이 아시아권 국가와의 경기였던 반면에 그러니까 막 승리하면서 자신감을 쌓아나가는 거.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 상반기에 4년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아시아 국가와는 단 한 번만 경기를 치렀을 뿐이었어요. 
그러면서 계속 강팀들이랑 부딪히는 거지. 
세계적인 팀들과 붙는 경험

쉽게 얻기 힘든 귀중한 기회라면서요 심지어 6월 월드컵 개막인데 이 개막을 앞두고 5월에 마지막으로 치른 공식 평가전 상대들은 다 유럽 국가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 본선 첫 경기 직전 심지어 마지막 평가전. 
두 경기 상대는 잉글랜드 그리고 지난 대회 우승팀 프랑스 1년 전에 0대5로 참패했던 프랑스랑 월드컵 직전에 붙이는 거죠. 
그 뭐야 이거는

학대를 즐기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그 일정을 보고 우려가 되게 컸어요. 
여기서 기가 완전히 죽고 나가서 무슨 죽을 더 쓰려고 막 그 직전 월드컵 우승팀이었다. 
지단의 왕리의 트레제게. 하지만 많은 사람이 우리가 우리 땅에서 열리는 월드컵 직전까지 험한 꼴을 보면서 낯선 외국인 감독 체제에서 완전히 망하는구나라고 포기할 때쯤 대표팀은 서서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3월 핀란드전 승리, 4월 코스타리카전 승리 그리고 5월에 유럽 3개국을 상대로 보여준 완전히 달라진 경기를 특히 프랑스와의 마지막 평가전에서 나온 박지성 선수의 득점은 나중에 돌아보면 거의 포르투갈전의 결승골을 예고하는 것 같다고 할 만큼 기막힌.

그런데 1년 후에 이제 프랑스를 딱 만나서 경기장에 딱 들어오는데 그 친구들 똑같은 선수들이에요.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이 축구를 하는데 모든 움직임이 제 눈에 들어오고 모든 움직임이 다 예측 가능한 거예요. 
다 따라갈 수 있고 제가 다 반응할 수 있고 거기서 제가 이제 저는 스스로 엄청난 자신감을 얻었었어요.

아마 정신적 측면에서는 이 세 경기가 월드컵을 앞두고 확실히 이 월드컵은 다를 것이다라고 선수들에게 확신을 심어줬던 평가전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나 그때 수원에 있었어.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했었거든. 
보면서 이게 한국이야 그러니까 그런 한국 팀의 경기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보고 나서 우와 진짜 되는 건가 싶었다니까 진짜 내가 그때 잊을 수가 없다. 
20년이 넘게 지났잖아. 근데 그거 잊을 수가 없어.

그리고 아시다시피 지금까지는 본 게임을 준비하기 위한 경험 쌓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월드컵이 개막하자 첫 경기부터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힘을 뺀다고 욕을 먹었던 파워 프로그램은 덩치 큰 외국 선수들과 쉼없이 몸싸움을 하고 경기 끝날 때까지 무섭게 뛰어다니는 한국 선수들의 체력으로 성과가 입증됐고요. 
멀티플레이어를 쓰기 위한 쉼없는 실험도 궁지에 몰렸을 때 효과를 톡톡히 봤죠.

이탈리아전에서 1대0으로 선체골을 먹고 지고 있을 때 후반전에 수비수들을 빼고 공격수를 쫙 집어넣었을 때 수비가 밀릴 수 있잖아. 
근데 멀티 플레이로 사람들이 쫙 돌면서 이게 그때 멀티 플레이에 실험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그 경기가. 
그리고 선수들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세계 최강의 상대들을 만나서도 결코 쫄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전에 강한 상대랑 붙었던 경험들이 밑바탕이 됐던 거예요.

게다가 히딩크 감독은 대표팀 내부뿐만 아니라 경기 외적인 면에서도 명장의 경험이구나 싶은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줬어요. 
리더로서 절대 주눅들지 않는 자신감을 한결같이 보여줬고요. 
그리고 막 이기니까 사람들이 16강 나가가지고 되게 만족했거든. 
이탈리아 16강에서 붙으니까. 아 이제 뭐 여기서는 그냥 잘 싸웠다 이 정도만 해도 나는 감격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는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는다. 
1승을 할 때부터 시작해서 16강, 8강, 4강 올라갈 때

더 높은 목표를 공공연히 이야기하면서 계속해서 제시했죠.

이뿐만이 아니라 한국 팀의 스피드를 이용하려면 잔디가 짧고 젖어 있어야 한다면서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리게 만들고, 더 짧게 깎게 만들고, 미리 더 뿌리게 하고 막 그랬었대요. 
또 16강 이탈리아전을 앞두고서는 거친 플레이를 하는 상대를 맞을 때는 심지어 붉은 악마한테까지 국대 감독이 직접 주문을 하고 전화 연결해 달라고 그랬대. 
전화 연결해가지고 얘기를 한 거지. 이탈리아가 거친 파워를 하면 엄청나게 야유를 퍼부어라 모아가지고 경고를 받을 수 있게 홈의 이점을 완전히 살리는 거죠.

임 감독님이 오늘 저녁에 붉은 안마 단장을 내하고 통화시켜줘라 그렇게 한 적이 있어요. 
왜 단장하고 붉은 악마 단장하고 왜 통화를 하지? 단독이 알고 봤더니 항의를 하게 되면 붉은 악마에서 심하게 심판한테 좀 심판의 압박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좀 야유를 해라

깜짝 놀랐어요. 저는


야 벌써 관중들에 있는 그런 것까지 심리적인을 이용해서 신발을 압박하는구나

또 8강 스페인전에서는 승부차기까지 가는 승부를 예상해서 페널티킥을 집중적으로 연습 선수단 선발, 체력과 조직력 끌어올리기, 부상 선수 치료, 상대팀 분석, 미디어 대응 능력과 미디어를 통한 심리전, 경기장 안팎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응하는 부분까지. 
히딩크 감독은 2002년 월드컵을 통해서 왜 뛰어난 지도자가 필요하고, 왜 우리가 앞선 이들의 경험에서 배워야 하는지,

성장을 위해서는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려준 인물이었죠. 
물론 국민들과 당시 축구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밑바탕이 됐겠지만요. 
선수들도 아주 잘 따라줬고. 하지만 히딩크 감독 덕에 2002년의 기적 같은 결과가 가능했음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히딩크 감독 얘기를 했지만요 사실 꼭 축구 얘기를 하려던 것만은 아니고요

세상 많은 일이 축구만큼 혹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겠지만 한국 축구가 히딩크 시대에 변화하고 성장했듯이 성공의 경험과 탁월함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영역은 많으니까 저를 포함해서 히딩크 감독의 이야기를 다시 보시는 많은 분들이 어디에 계시든 어떤 상황에 놓이셨든 간에 탁월함에서 배우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히딩크 감독의 이야기를 다시 짚어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끝으로 다시 없을 2002년의 기쁨을 선사해준 히딩크 감독의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지금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면서 히딩크 감독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이번 편 마치겠습니다. 
감독님 진심으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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