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무슨 3대 패션 브랜드라는 표현 들어봤어요? 4대라는 얘기도 있는데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슷한 평가가 있죠.
근데 보통 이런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이 안 사야 될 거 아니에요.
하지만 매출이 늘어요. 이유가 뭘까요? 작년 재작년 사이에도 늘었고요.
심지어 명품 기업이 이 브랜드를 사버렸죠.
아 저만치 패션 저거 이미지 깎여서 점점 안 입을 거야 싶었다면 안 샀겠죠.
산 이유가 뭘까요?
그리고 혹시 이거 보고 계신 분들 중에 개명하신 분들 있을까요? 이름을 바꾸면 일이 좀 잘 풀린다.
뭔가 너무 일이 안 풀려서 이름을 좀 바꿔보고 싶다.
이런 근데 이게 오늘 주제랑도 연관이 있는데 이 브랜드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특이하죠.
전혀 의도했던 게 아닌데 극성 축구 팬들한테 인기를 얻어서 악명을 떨치다가 유럽에서는 세계적인 축구 선수 축구 감독도 즐겨 입고 엄청나게 좋아하는 연예인이 대륙을 넘어서 북미에까지 퍼뜨리고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랜드.
이번 주제는요 마치 수도승이나 학자와 같은 자세로 옷을 만들었는데 전혀 예기치 못한 소위 오는 애들에 의해서 전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성공한 브랜드 원단과 염색의 혁명 스톤아일랜드입니다.
이렇게 다니다 보면 딱 봐서 이거다 싶은 상표 뭐가 생각나요? 여러 가지가 있죠 문양도 있고 스톤아일랜드도 그렇죠 가격이 꽤 되는데 팬들의 충성도가 상당하잖아요.
와펜이라는 게 유명하잖아요. 이런 데다가 단추로 달아놓은 분
이거 분실했는데 어떻게 해야 되냐라고 인터넷 게시판에도 올라오고요.
중고 거래도 와펜 하나에 몇만 원씩 사고 팔고 고스트피스라는 거 와에는 더 비싸고 근데 하긴 쇼핑백이나 양주병 같은 것도 거래를 하니까 아무튼 근데 스톤아일랜드가 처음부터 특정 마니아층을 노리고 만들어진 브랜드는 전혀 아니었어요.
스톤아일랜드 만든 마시모 오스티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자라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학업을 중단한 뒤에 영업사원으로 일하다가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해서 광고 디자이너가 된 사람이었거.
그런데 광고 시안 작업을 하던 20대 중반에 티셔츠 디자인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습.
그래서 티셔츠에 들어갈 모양을 만들어줬는데 이게 어땠느냐? 마시모스티의 디자인이 프린팅돼서 나온 티셔츠가 아주 잘 팔려서요.
이 일이 계속 들어왔다고 하죠. 그런데 돈 주는 사람이 시키는 일만 해도 쏠쏠하면 어때요? 계속 그것만 하게 되잖아요.
근데 거기에서 멈추질 않습.
이후에도 계속 드러나는 특성인데요. 마시모 오스틴은 디자인 시한만 넘겨준 게 아니라 독특한 작업을 직접 하기 시작했.
왜? 우리가 사진 찍거나 시안을 만들어서 화면으로 볼 때랑 인화돼서 나오는 거랑 느낌이 달라지기도 하지.
그런데 마시모 오스틴은 자기 시안이 원단에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이게 그대로 구현되는지를 보고 싶었는지요? 아예 직접 프린팅 작업까지
맡아서 했어요. 디자이너가 인쇄까지 직접 하는 거죠.
당시에 이탈리아에서는 의류 제작에 잘 쓰이지 않았다는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왜? 이 실크 스크린 기법을 쓰면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들어서 여러 번 시도가 가능하다는 이유도 있었겠죠.
그러다가 또 자기 시안이 옷 자체에 비해서 너무 튀게 프린팅이 된다면서 티셔츠 염색에까지 또 손을 대고 이렇게 작업한 독특한 티셔츠가 계속 잘 팔리니까요.
급기야 투자자가 달라붙고요 경력을 전환해서 본격적으로
패션업계에 뛰어들게 되죠. 그리고 좋아하던 만화 속에 나오는 이름을 가지고 브랜드명을 정합니다.
체스터 페리 1971년의 일이었어요.
그런데 아직은 그래봤자 동네의 작은 브랜드였던 마시모 오스티의 체 페리는 티셔츠부터 해서 점차 품목을 늘려나갑니다.
이 시절의 특징은 우리가 지금 가먼트 다행이라고 부르는 염색 기법이었어요.
당시에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는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사전에 염색된 직물로 옷을 만드는 선염 기법이 아니라 옷을 먼저 만들고 나서 그다음에 염색을 하는 후염을 하는 거죠.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옷마다 미묘하게 다른 색감이 나올 거고요.
또 패턴이나 원단에 따라서 염색하고 옷감이 줄어들면 또 다른 느낌이 나오는 거죠.
이때 얼마나 원단과 염색의 진심이었으면 이 시절에 화학자를 직접 고용을 했대요.
그래가지고 염색 연구를 전담하게 만들고 그렇게 작업한 결과물들을 전부 다 아카이브하고.
그런데 요즘에도 왜? 뭐 잘 안 풀리면 이름 바꾸는 사람들 있잖.
이렇게 당시로서는 독특했던 마시마 오스틱의 작업이 큰 인기를 끌면서 기존의 유명 브랜드 원래 있었던 프레드 페리와 체스터 베리가 이름이 비슷하다고 문제를 삼기 시작하.
아까 체스터 페리라고 했잖아요. 체스터 베리 프레드 페리 두 개의 앞뒤를 합쳐가지고 만들면 체스터 펠리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1978년에 브랜드명을 바꾸죠.
체스터 페리에서 cp 컴퍼니로. 근데 재밌는 게요 뜻하지 않게 이름을 바꿨는데 이 브랜드 명이 오히려 더 인기를 끕니다.
특히 이탈리아 예술가와 지식인 무엇보다 어린 잘 노는 인사들 사이에.
그런데 스톤아일랜드 얘기는 언제 나오느냐 이제 나와요.
cp 컴퍼니를 시작한 마시모 호스티가 점차 브랜드를 늘려가거든요.
아동복도 만들고 다른 브랜드도 만들 그러다가 1982년에 드디어 스톤아일랜드 브랜드를 런칭하고 재킷을 내놓습니다.
시피 컴퍼니랑 느낌이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역시 똑같은 건 원단과 염색 기법이 독특했다는 거죠.
일단 스톤아일랜드에서 처음 옷을 만들 때 옷감을 뭘 선택했냐면 양면이 다른 색이고 아주 질긴 군용 트럭 방수포 소재를 사용했어요.
방수포를 여러 번 워싱해서 텔라 스텔라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원단에 서 그리고 재킷에다가 주머니를 막 여러 개 달았는데 왜 그랬느냐 그런 분들 있잖 가방 들고 다니기 싫어하는 원래 마시모 호스티가 군복이나 제복 같은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데다가요 그 아들 얘기에 따르면 아버지가 가방 들고 다니는 걸 엄청 싫어해요.
그래서 그런 옷들처럼 주머니를 많이 달고 제복에 계급장처럼 와펜 생각도 했던 거겠죠 바다를 향한 열정과 난파선 등의 이미지를 담고 싶었다는 로고를 새기기 그리고 스톤아일랜드가 처음부터 데이트를 기록하고요.
그로부터 얼마 안 돼서 마시모스티는 회사 지분의 절반을 매각합니다.
맞춤복이 아니라 미국에서 들어온 기성복 시스템을 2차 대전 이후 이탈리아에 적용해서 큰 회사가 된 기업이에요.
아마 마시모스트 본인은 기업 경영보다 계속 옷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싶었겠.
그리고 실제로 온종일 공장에 박혀서 소재 그리고 염색에 변화를 주는 실험들 막 지속하면서요 cp 컴퍼니와 스톤아일랜드 스타일을 확립시킵니다.
겉은 면인데 안감은 울로도 만들고 면에 쓰는 가공법을 울에 적용하고 옷감에다가 막 고무 코팅 하고 온도 변화에 따라서 색깔이 변하는 아이스 재킷 등등 이렇게 손바닥을 딱 대면 따뜻해지니까 손바닥 모양으로 이렇게
거의 뭐 패션 브랜드라기보다는 약간 실험실 같다까 나중에는 막 옷에다가 시피컴퍼니의 상징 같은 건데 약간 이렇게 후드에 고글이 달려 있어요.
이렇게 시계 보는 자리에 이게 구멍이 뚫려 있고 기능적인 거에 집중한 거였겠.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이 마시모 오스티가 온갖 실험에 매달려 있는 사이에 이 브랜드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건 전혀 뜻하지 않은 계기 덕분이었.
왜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는 다른 나라가 뭐예요 다른 동네 스타일을 볼 기회가 많지 않았거든
한국에서도 그래서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 패션 잡지 해외 잡지 같은 게 영향력이 상당했거든요.
유명하던 옷집에 가면 일본 패션 잡지 서양 패션 잡지들이 놓여 있고 막 그랬었.
그뿐만이 아니라 서울에서도 동네에 따라서 교복 입는 스타일도 다르고 그래서 강남은 어떻고 강북은 어떻고 바지통을 줄이냐 넓히냐 바지통을 끝단만 줄이느냐 쭉 다 줄이느냐 치마를 어떻게 입느냐 등등 이렇게 다르게 입고 다니다가 딴 동네 사람들을 비로소 직접 보면
얘들은 이렇게 힘든구나 이 동네는 이렇네.
그런데 유럽도 사정이 똑같았던 거죠.
왜 바니날이라고 부르는 이탈리아 북부의 청소년 그룹에서 시작된 유행이 있었.
거기서 스톤아일랜드나 시피컴퍼니 같은 마시모 오스티의 작업이 인기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유럽 클럽 대항 전 축구 경기를 보러 이탈리아에 왔던 영국 특히 영국 북부의 극성 팬들이 그걸 보고 마음이 동한 거지.
그래서 이 영국 북부의 극성 팬들이 어땠느냐 엄청 스톤아일랜드 시피 컴퍼니 사과
돈 없으니까 훔쳐가기도 하고 왜 버버리 편에서도 영국의 극성 축구 팬들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말썽을 일으키니까 단속이 심해지면서 축구장 입장 자체도 못하게 했다는 얘기를 했었잖아.
근데 또 그렇게 막으니까 축구는 봐야겠고 얘들이 비싼 브랜드 옷을 입으면서 짝퉁도 있고 워킹 클래스 출신의 말썽쟁이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 아니다 이런 것처럼 해서 정체를 숨겼다.
근데 그렇게 해서 입어보니까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이 사람들 마음에 들었던 거예요.
일단 옷감이 튼튼하지
계속 입고 다녀도 되지 주구장창 춥고 비 오는 날씨에 맞게 따뜻하고 심지어 주머니까지 많아.
근데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 팬들이 좋아하는 축구 레전드도 있고 전설적인 락밴드도 입으니까 유행이 죽지 않고 쭉 가는 거죠.
그런데 정작 당시에 마시모 호스티는요 자기 브랜드가 왜 이탈리아를 넘어서 세계로 퍼져나가는지 이해를 못했다고 하죠.
그리고 이렇게 이탈리아와 영국 등 유럽에서 컬트적인 제재를 받았던 유행은 시간이 흘러서 유럽을 넘어서 아시아, 일본으로 넘어오고 90년대 말 2천년대 초에는 일본과 유럽의 영향으로 한국에까지도 주로 그때도 인기였어요.
그래서 비싸니까 약간 있는 집 형들이 잘 입었었.
다만 이렇게 이탈리아를 넘어서 영국, 아시아까지 유행을 했는데도요 마시모 호스티는 2005년 별세할 때까지도 계속 의아해하긴 했대요.
물론 이미 자기 지분을 다 넘겨서 내 거 아니니까
관심 없었던 거 아니야 싶을 수도 있지만요.
그런 거랑 상관없이 계속 작업에만 몰두해서 그랬던 것 같.
니들은 입어라 나는 유행이고 뭐고 계속 만든다 그런 거지.
실제로 스톤아일랜드 시피 컴퍼니에서 손을 떼고서도 신기한 거 많이 만들었거든.
mp3 플레이어랑 이어폰이랑 핸드폰이랑 옷이 막 이렇게 막 다 연결돼 가지고 넣을 수.
오죽했으면 별세하기 전까지 본인 작업을 아카이브 해놓은 게 5만 점 가까이나 될 정도였겠어요.
그러니까 유족들이 이 작업 정리하는 데 4년이나 걸렸대.
그리고 2010년대 드디어 북미 시장에서도 본격적으로 스톤아일랜드 입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도 축구 때문이었을까요? 아니죠.
이번에는 힙합
드레이크나 트레비스 스캇 같은 아티스트의 영향이 컸어요.
어떤 경우에는 자기들끼리 따라 입은 것 아니냐고 약간 다툼이 있기도 했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드레이크가 스톤아일랜드를 즐겨 입는 걸로 유명한데 예전부터 어딜 가도 스톤아일랜드 있는 모습이 포착이 되거든요.
브레이크가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이혼해서 엄마랑 같이 살았는데 이 어머니가 스톤아일랜드 니트를 즐겨 입었대.
좋은 추억 같은 게 있는 거였겠죠. 엄마를 위하는 약간 퍼포먼스 같은 것도 많이 하죠.
그리고 스톤아일랜드 브랜드를 사들인 업체의 사장님 아들이랑 드레이크랑 같이 어울리는 친구였다고.
그렇게 힙합 아티스트들이 소환하는 바람에 북미에서도 스톤아일랜드가 확산이 되다가 급기야 2010년대 중반부터는 슈프림, 마이키 등과 콜라보를 하면서 완전히 날아가 버렸죠.
그 사이에 마시모스티가 먼저 만든 브랜드 cp 컴퍼니는 손바꿈을 거치면서 홍콩계 다국적 패션 기업에 넘어갔고요.
지금 스파이더와 리봇 갖고 있는 회사죠.
스파이더도 약간 그런 브랜드라고
비슷한 느낌을 가진 브랜드가 몰려 있는 게 신기하지.
그리고 이어서 지난 2020년에는 스톤아일랜드가 몽클레어 품에 안기게 됐.
원단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하던 이가 만든 브랜드가 이탈리아에서 영국 극성 축구 팬들에게 확산되고 그리고 이제는 프랑스에서 시작은 됐지만 사실상 이탈리아 기업가가 명품으로 탈바꿈시킨 브랜드 품에 안기면서 명품 고객들에게 어필하게 됩.
스톤아일랜드는 어쩌면 사랑받는 브랜드란 만든 사람의 의도나 지역적 한계, 시대적인 배경을 초월해서 생명력을 가진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는 이름일 텐데요.
이런 스톤아일랜드는 어떻게 될까? 이 브랜드가 언제까지 또 앞으로는 어떤 이들에게 사랑받게 될지를 함께 지켜보시면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