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덥다라는 말이 지겹게 느껴질 만큼 숨 막히는 계절이었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 여름 평균 기온은 25.6도로 2018년을 제치고 여름철 평균 기온 역대 1위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8월 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2.8도 높게 나타나면서 유독 더운 한 달을 보내기도 했었죠.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럽연합의 기후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 변화 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8월에 세계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51도 상승했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평균 기온 또한 산업화 이전보다 무려 1.64도 높아졌죠.
올 여름이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록된 이유입니다.
이로 인해 파리 협정에서 정한 1.5도 목표 달성에 이미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지난 여름이 앞으로의 여름 가운데 가장 시원했던 여름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폭염은 우리의 일상뿐만 아니라 산업까지 바꿔놓고 있는데요.
그중에는 관광산업도 포함돼 있습니다. 세계경제포럼은 기온 상승으로 인해서 관광산업 일부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죠.
극심한 더위로 관광객들이 휴가 일정을 줄이거나 기존에 찾던 여행지 대신 더 시원한 곳을 찾을 것이라는 분석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관광산업의 경제를 의존하는 국가들은 기온 상승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합니다.
일례로 카리부의 휴양지 대부분은 해안가에 있는데요.
이 중 60%가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한편 유럽에서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자 최근 몇 년 동안 에어컨 설치율이 증가해서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뜨거워진 기후가 각국의 관광지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 걸 안녕하세요.
저는 이승원이고요. 오늘은 변화하는 관광 산업에 대해서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겠습니다.
지난 8월 막을 내린 파리 올림픽은 개막 전부터 여러 논란에 휩싸인 바 있습니다.
그 가운데 에어컨 사용 문제도 있었죠. 저탄소 올림픽을 추구하면서 선수촌 건물에 에어컨 설치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겁니다.
대신 효율적인 건물 설계와 지열 냉각 시스템 등을 활용해서 숙소 온도를 26도 이하로 유지하겠다고 했죠.
하지만 이에 대해서 적지 않은 국가의 선수들이 반발했고 4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자 결국 소형 에어컨 2500대를 설치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왜 노 에어컨을 고집하려 했을까요?
사실 프랑스에서 에어컨은 여름 필 수품이 아닙니다.
연간 9천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나라임에도 에어컨 설치율은 10%도 되지 않습니다.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도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 사무실은 물론이고요. 가정집과 대부분의 관광지 심지어 호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죠.
이런 상황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인데요.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유럽의 에어컨 보급률은 19%로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서 현저히 낮습니다.
이처럼 설치 비율이 극히 낮은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기후적 특성을 꼽을 수 있는데요. 프랑스, 독일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의 여름은 기본적으로 습도가 낮아 건조하고 평균 기온도 30도 내외로 폭염이 드뭅니다.
그리고 극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기간도 통상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매우 짧은 편입니다.
이러다 보니 굳이 에어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죠.
두 번째는 비싼 전기요금 때문입니다. 유럽은 냉방요금이 난방 요금보다 더 비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화석 연료를 줄이면서 재생에너지 비율이 더 증가했는데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전기 요금이 더 폭등했습니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서 유럽의 전기요금이 다른 곳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죠.
또 유럽의 건물들은 대부분 오래전 돌이나 두꺼운 벽돌로 지어져서 에어컨을 설치하기도 굉장히 힘듭니다.
게다가 몇몇 국가들은 뜨거운 열을 내뿜고 거리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실외기를 주택 외부에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도 이렇다 보니 유럽에서 에어컨을 찾기 어려웠던 겁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유럽은 극심한 폭염을 겪어왔죠.
지난해 4만 7천 명, 2022년에는 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했습니다.
올해는 무려 7만 명에 가까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죠.
이처럼 이상고온 현상이 계속되자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50년까지 유럽의 에어컨 설치율이 4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실제 이탈리아의 경우 연간 에어컨 판매량은 2012년 86만5천 대였지만 10년 만인 2022년 192만 대로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처럼 이탈리아에서 에어컨 사용이 증가하자 난데없는 에어컨 전쟁이 불거지기도 했죠.
작은 부촌 마을 포르토피노는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아야 하는 등 설치 조건이 까다로운 데다 당국의 허가까지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극심한 더위가 계속되자 무단으로 에어컨을 설치하는 집이 늘어난 건데요.
이를 주민들이 서로 감시하고 신고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한편 폭염을 계기로 증가하는 유럽의 에어컨 보급이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옵니다.
에어컨 사용의 위험성을 경고한 여름 전쟁의 저자 스탠콕스는 지금 유럽인들이 에어컨을 구입하는 것을 비난할 수 없다면서도 유럽인들은 지난 2003년 발생했던 폭염이 몇 세기에 한 번씩 일어나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20년도 안 돼 다시 격 앞으로는 더 자주 폭염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무더위가 계속되자 관광객들은 시원한 곳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월스트리저널 보도에 따르면 올해 6월과 8월 사이 스웨덴과 핀란드 여행 예약 건수가 각각 70% 그리고 126% 증가했습니다.
노르웨이 관광객도 전년 대비 37%나 증가했죠.
이 국가들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해서 춥고 어두운 날씨 때문에 그동안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주요 관광지의 기온이 급상승하자 폭염을 피해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증가한 겁니다.
이런 현상은 여행 정보 검색 사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온이 낮은 곳을 찾는 미국발 항공기 검색량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 기온이 상대적으로 서늘한 편인 영국도 반사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사우샘프턴 지역 항공편 검색량은 1년 전과 비교해 무려 57% 증가했고요.
미국 알래스카주의 항공편 검색량도 25% 늘어났습니다.
유럽여행위원회 전문이사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점점 더 빈번해지는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장기적으로 여행 패턴과 목적지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이죠.
한편 기후위기로 인해서 말 그대로 한정판 여행지가 될 위기에 놓인 곳들도 있습니다.
가장 친 한 곳은 이탈리아 물의 도시 베니스죠. 이곳은 온난화로 인해서 해수면 상승으로 최근 몇 년간 홍수가 더욱 잦아졌는데요.
전문가들은 도시가 매년 1~4mm씩 물에 가라앉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대로라면 2030년에는 더 이상 베니스를 관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죠.
태국 역시 해수면 상승으로 최근 비상이 걸렸습니다.
수도 방콕이 7년 안에 물에 잠길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기 때문이죠.
태국의 국가연구위원회 위원이었던 아누손 탑마자 박사는 당국의 해수면 상승과 도시 침몰에 대처하지 못하면 빠르면 7년 안에 방콕의 80%가 물에 잠길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세계은행도 2030년이면 방콕의 40%가 물에 잠길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죠.
이외에도 네덜란드의 암스트렐담, 미국의 뉴올리언스, 베트남의 호치민, 일본의 나고야 등 유명 도시들이 2030년경이면 침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전망이 함께 나오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이제 코앞에 닥친 현실이 됐습니다. 사람들이 실제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고, 유럽에서만 매년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기존에 필요 없던 에어컨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는 또다시 기후 위기를 재촉하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습니다.
동시에 언제든 가면 볼 수 있었던 특정 지역, 혹은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자연을 이제는 영영 볼 수 없는 상황이 됐죠.
더 불행한 것은 이런 상황을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는 겁니다.
세계 지도가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