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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도 재벌도 못하는 일을 성공해나가는 백종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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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댓글 0건 조회 178회 작성일 23-09-2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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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물을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아마 한 번쯤은 이분 얘기대로 음식을 만들어본 분들은 많을 것 같아요. 

저도 어젯밤에 우연히 자료를 찾아보다가 이렇게 영상이 떴는데 달걀 후라이를 이렇게 하더라고요. 

들기름에다가 먹었는데 좋더라고요. 계란 8개 먹었네. 

그래서 방송인 출신이 아닌데 tv 유튜브 가리지 않고 영향력을 가장 오랫동안 또 가장 강하게 행사하고 있는 인물 중 한 명 같기도 하고요. 

또 요즘에는 고향에 있는 전통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로 주목을 받고 있죠.


사실 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몇이나 될까 싶은데 사람이 엄청 몰린다면서요 어릴 적부터 큰 사업가가 되고 싶었다는 유달리 음식을 좋아했다는 소녀는 어떻게 잘 나가는 음식점 사장님이 되고 사업에 망해서 큰 빚을 졌다가 어떻게 다시 재기해서 더 성공한 사업가가 되고 영향력 있는 방송인이 되고 또 지금까지 왔을까요?


사실 소비더먼이 아주 초창기에 백종원 대표 편을 하고 싶었는데 그때는 회사에서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있어가지 못했고 이제 만들게 됐어요. 

워낙 이분이 방송에서 직접 했던 유명한 얘기들이 많기도 하고요. 

또 여기서 세는 세금이라는 유명세가 최고 수준이니까 워낙 유명한 일화가 많고 어쩌면 그걸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릴 수는 있겠지만 아무튼 그래도 저는 전부터 책 읽고 방송 볼 때 배울 점이 많다고 느껴서 예산 시장 얘기가 나오니까 이제라도 영상을 만들고 싶었.


그 이야기는 충남 예산에서 시작합니다. 

예산의 부유한 집에서 자란 백종원 대표 가족 모두 미식가였다고 하죠 입맛이라는 것도 왜 전수되는 편이잖아요. 

그러니까 뭐든 좋은 걸 많이 접할수록 기준이 계속 높아지는 거니까 입맛도 그렇죠. 

아무튼 가족들이 먹는 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해서 외식을 하면 부모님이 아이들한테도 항상 자기 메뉴 선택권을 줬대. 

엄마 아빠가 뭐 이거 먹어 이거 먹어 이게 아니라 애들한테 메뉴 각자 먹고 싶은 건 자기가 골라라.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고심하면서 메뉴를 고르는 거지


뭐 먹지. 그래서 놀러 가도 먹는 거에 따라서 한 식당에 다 들어가는 게 아니라 가족들이 선호에 따라서 이렇게 나뉘어서 움직이. 

음식이 별로다 싶으면 식당에 갔다가 하루저녁에도 너댓 군데 식당을 옮겨다니면서 밥을 먹을 정도였대요. 

먹다가 이렇게 딱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다른 데로 가고 근데 어렸을 때 뭘 제일 집중해서 많이 오래 했어요. 

나는 하루 종일 tv 보고 신문 읽고 그랬는데 그게 재미있었거든.


그래서 여기 왔나 아무튼 뭐 어떤 게 더 좋다 나쁘다 이런 얘기가 아니고요. 

주변을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약간 사업가 기질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죠. 

그리고 유명 인사 중에서도 대학 가기 전에 핀볼 머신 데어 사업을 했다는 워렌버핏 신문 빨리 돌리려고 남들과 다른 방 고안했던 배우 김우중 회장 서울대 졸업식에 서울대생인데 보온병을 메고 커피 팔로 막 이동식으로 다녔던 메가스터디에 손주은 대표도 인


아무튼 근데 백 대표는 그랬대요. 초등학교 때 9살인데 장래 희망이 버섯 농사였대. 

나무에 물을 뿌리면 버섯이 막 저절로 나는 것처럼 보이니까 쉬워 보여가지고 아 저건 돈 벌기가 쉽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죠. 

9살이 자기네 집은 과수원이 있었는데 과수원이 되게 힘들어 보여서 저건 좀 쉬워 보인다 이런 생각을 했. 

그리고 4학년 때인가는 소풍 가서 다른 애들이 놀 때 리어카를 빌려가지고


풍에 와서 애들이 막 보물 찾기 하는데 애들이 당시에는 유리병으로 음료를 먹으니까 그 음료수 공병을 모아다가 고물상에 파는 거야. 

이해가 돼 11살짜리가 그걸 5학년 때까지 했었. 

그리고 생각보다 돈을 많이 벌었대. 그리고 군대에서도 간식으로 당시에 날계란이 나왔었대요. 

근데 날계란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 아니야. 

그걸 가져다가 삶아가지고 날계란 2개랑 삶은 거 하나랑 다시 바꾸고 어떻게 삶았냐 음료캔을 구에다가 그걸 잘라가지고 달걀을 거기다 넣고 벽돌을 딱 쌓아가지고 밑에 신문지 깔고


태우면 계란이 삶아진대요. 근데 이제 캔이랑 신문지가 필요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걸 구하려고 청소를 자원하고 어렸을 때 이랬으니까 뭔가 좀 특이한 부분이 분명히 있죠


이렇게 캔 위를 잘라요. 소각장에서 부순 캔 그러니까 이렇게 뭐 음료수 캔을 잘라서 여기에다가 이제 계란을 넣고 그냥 이렇게 그냥 넣어요.


아무튼 그랬던 백종원 대표가 성인이 되고 대학생이 되자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그 입맛 그리고 사업가 기질은 그대로 아니 더욱 발전하고 있었. 

일단 입맛의 경우에는요 시간이 나면 아니 땡땡이를 쳐서라도 처음에는 막 학교 앞에 맛집을 다 돌아다녔어요. 

몇 개월 만에 다 해. 그 뒤에는 서울의 맛집을 쫙 찾아다니고 그 뒤에는 전국의 맛집을 찾아다니고 어느 정도였냐면 유명한 백반집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강원도를 가서 밤에 돌아올 정도였던


오전에 출발해가지고 가가지고 밥 먹고 돌아오면 막 밤이 되고 알바도 했었는데 알바를 왜 했느냐 맥주를 좋아해가지고 마음껏 마실 수 있는 호프집에서 알바를 했대. 

근데 왜 기억나시는 분들 계실지 모르겠지만 왜 버거킹 편에서 창업자가 알바할 때부터 재고 정리를 자청해가지고 식당 효율을 높였다는 얘기 기억나요? 버거킹 얘기를 왜 하느냐 이번 편에서 다른 편 얘기가 자꾸 생각이 나거든요. 

백종원 대표도 그랬던 거예요.


20살인데 아파트 단지 근처 호프집에 치킨 메뉴가 있었대요. 

그 집에서 알바를 하는데 맥주가 좋아서 당시에는 근데 배달 문화가 거의 없을 때였다고 하고요. 

그래서 사장 할머니를 설득을 해가지고 전단지를 자기가 만들어서 아파트 그러니까 갑자기 치킨 배달 주문이 막 쏟아져 들어오고 그래서 한 대뿐이던 튀김 기계를 5대로 늘리고 오죽했으면 너무 주문이 많이 들어오고 장사가 잘 되니까 이 할머니 사장님이 너무 힘들어서 저는 못 하겠다고 했대. 

그래서 가게를 팔겠다고 하다가 아 할머니 가게 왜 팔아요? 막 이러니까


그래 그럼 니가 해보면 어때? 이렇게 물어본 거야. 

대학생한테 알바인데 근데 아무리 집이 위복하다고 해도 자기가 당장 인수할 돈은 없으니까 운영이라도 해봐라 이랬던 거야. 

그래서 그 가게를 막고 학생 치고는 돈을 엄청 벌었다고 하죠. 

친구들 후배들 불러다가 알바로 막 쓰고 왜 옛날에 현대편에서 현대 정주영 창업주도 처음 일하던 쌀가게에서 워낙 일을 똑똑하게 열심히 잘하니까 주인 아저씨가 먼저 가게 인


했다는 얘기가 유명하잖아요. 아무튼 그렇게 돈을 벌고 가게를 늘리고 심지어 나이트 클럽까지 인도하려고 했다는데 장사하는 걸 집에서 안 좋아한 거예요. 

그래서 집안의 회유 설득이 장교로 군대를 갔는데 마침 가게들 영업 제한 조치가 떨어지는 거예요. 

늦은 밤


주로 유흥업소 주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는 강조


범죄를 막기 위한 조치로 밤 12시까지로 제한이


그러니까 유흥업소뿐만 아니라 대중음식점, 극장, 만화방 등등 해가지고 자정까지밖에 영업을 못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가게들의 메리트가 떨어질 거 아니에요 군대도 가고 가게들을 싼 값에 정리를 하고 남은 돈으로 주식 투자를 했는데 잘 안 되고 그러니까 부자 대학생 사장님의 생활이 순식간에 평범한 군생활로 바뀌어버린 거죠. 

근데 살다 보면 왜 그때 당시에는 잘 모르는데 지나고 보면 뭔가를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 되는 시간들이 있거든요.


백종원 대표가 포병 장교였다는데 제대를 1년 남기고 변화가 생깁니다. 

새로 부임한 장군님이 입맛이 너무 까다로워가지고 간부 식당 관리자가 힘들어하는 거야. 

그래서 그걸 돕다가 아예 식당 관리를 맡게 된 거. 

근데 이렇게 가보니까 취사병들은 식당 일을 하다 온 사람들이 많아가지고 텃세가 있는 거야. 

그래서 얘들을 지휘하려면 어떻 기선을 제압하지 고민을 하다가 하루에 최소한 서너 시간씩 보름 동안 무채 써는 연습을 했다고 하죠 비싼 칼을 사다가 그리고 어느 날 딱 와서 다음 메뉴는 무생채다.


딱 정하는 거지. 그러니까 취사병들이 딱 와가지고 채칼을 쓰려고 하는 거야. 

채칼 쓰면 안 돼. 칼을 사용해라. 하니까 취사병들이 아이 무슨 칼을 사용해요 근데 그래 내가 보여주지 하고 보름 동안 서너 시간씩 연습한 거예요. 

바바바바바바 해가지고 길이 7cm 가로 세로 0.5cm 막 쏘는 거지 딱. 

그러니까 이제 취사병들이 확 놀래가지고 말을 듣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면서 중국집 출신한테는 중국 요리를 배우고 한식집 출신한테는 나는 어떻게


너는 어떻게 했어 먼저 보여줘봐. 그래서 그걸 배우고 돈가스 및 특기 있는 사병들한테 계속 전수를 받고 또 취사병들이 잘 모르는 어려운 메뉴 같은 경우에는 유명한 식당을 찾아가 가지고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대요. 

알려줄 턱이 잘 없잖아 보통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근데 내 군 식당 관리하는 장교다. 군인이니까 좀 뭔가 친근하기도 하고 다들 잘 알려줬대요. 

그렇게 제대를 앞두고 1년 동안 휴가도 안 나가고 외출도 안 나가면서 너무 재미있었.


하루 세 끼 식사 준비하는 거에 꽂혀가지고 식자재 사는 법 뭐 음식 세팅까지 탐구를 하고 심지어 저녁 전날까지 부대에다 막 뷔페 차리 행사하고 자라면서 길러진 입맛에다가 사업가 기질에다가 요리 스킬까지 추가된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나와서 음식점을 할 생각은 없었다고 해요. 

왜냐 나는 큰 사업가가 될 거니까 건설업, 무역업 이런 거 하고 싶어.


음식점은 뭐 식당 뭐 이렇게 생각한 거지. 

그렇게 사회에 나와서 인테리어 사무실을 차렸는데 우연히 부동산에 놀러갔다가 유명한 얘기죠 식당 자리를 소개를 받아가지고 덜컥 계약을 한 식당 자리 좋은 데 없어요 막 이렇게 그냥 말을 심심해서 걸었는데 이 사람이 그냥 자기를 소개해서 가는 거야. 

갔는데 이게 계약을 하면 안 될 거 아니야 그래가지고 권리금이라는 게 당시에 비싸니까 권리금이 너무 비싸다 후려치는 거죠. 

몇십만 원.


근데 그거를 그렇게 아니면 돈이 없어가지고 지금 못 사요 했는데 그 가게 주인이 그렇게 팔렸다고 한 거야. 

그런데 마을에 뱉어놓은 게 있으니까 이걸 덜컥 인수해버린 거지. 

그렇게 부업 정도로 식당을 시작을 하는데 업종도 원래는 대구탕을 하고 싶었. 

근데 사정이 안 돼서 그냥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쌈밥집을 뭔가 바꿔서 문을 열고요. 

그런데 그간 자기도 모르게 쌓였던 여러 기량이 이렇게


합쳐져서 폭발했을까요? 뭔가 바꿔보자 싶은 거야. 

그래서 찍어 먹는 막장을 거기다가 막 해물, 야채, 고기 막 등등을 썰어 넣어서 볶아서 볶음쌈장으로 만들고 또 썰어놓은 거 말고 덩어리째로 사면 손님들한테 고기를 더 많이 주고 더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아예 고기 써는 기계를 샀는데 기계를 싼 걸 사서 잘못 샀대. 

그래서 고기가 이렇게 안 썰려 나오고 얇게 말려서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사람들이 좋아했던 대패 삼겹살이죠. 

또 이렇게 고깃집 가면 소스를 찍어 먹는데 기름진 거 고기 찍어 먹으면 소스 위에 기름이 뜨잖.


자꾸 이게 기름이 떠서 불편하니까 아예 고기를 소스에 담가서 내면 어떨까 싶어가지고 했던 게 또 히트를 하고 점차 이게 본업이 식당이 되어가는 분위기가 되는 거죠. 

근데 이렇게 장사가 잘 되는데 이 20대 후반이었어요. 

이 20대 후반 젊은 사장의 마음속에 불만이 자꾸 쌓이는 거야. 

왜냐 아니 내가 남 부럽지 않은 집안에서 자라가지고 그 명문대를 나오고 군대에서는 또 장교였고 손님들이 반발하고 또 취객들이 막 욕도 하고 그런데 거기다 막 인사에도 고개 숙여야 되고 게다가 집에서는 또 음식점 하는 걸 안 좋아하니까


내가 이런 대접까지 받으면서 이걸 해야 되나 내가 원하는 거 이렇게 정장 입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장님인데 그걸 해야지. 

백종원 대표는 자신의 책에서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회상하죠. 

그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실패나 좌절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식당을 하면서도 남들처럼 적자가 나거나 돈이 없어서 마음고생을 한 적이 없었.


그러다 보니 식당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젊은 날 지나치는 과정일 뿐 내가 앞으로도 하려는 일은 절대 아니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결국 그런 생각 때문에 다른 길로 쉽게 빠져들게 되었다. 

그렇게 잘 되는 쌈밥집을 뒤로 하고요 식당에서 번 돈을 건축 자재 수입하는 사업에 투자를 한 거예요. 

엄청 잘 됐대. 목조 주택이 당시에 막 유행할 때라서 수십억씩 한 해에 매출이 나오고 그래서 막 이렇게 놀러 가가지고 다른 사장님들이 백 대표 식당도 한다면서 이렇게 물어보면 에이 그거 뭐 큰 한식집


그냥 취미로 하는 거예요. 이렇게 나오고 쌈밥집이라고도 안 했대. 

또 이게 자재 수입하는 게 잘 이제 아예 그냥 집을 내가 지어보자 시공을 해야겠다 해서 목조 주택 단지를 내가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큰 기업을 이루겠다는 꿈이 점차 이뤄져 가고 있는 것만 같던 30대 초반 그에게도 남들과 똑같이 그날이 닥쳐왔습니다. 

imf 외환위기


이미 집 수십 채를 지어주기로 계약을 해서 자재를 수입해야 되는데 아시다시피 환율이 2배도 넘게 폭등했잖아요. 

결국 이 부도는 피하고 집은 다 지어줬는데 그걸 다 자기 돈으로 했어야 되니까 17억이나 빚을 지게 됐다고 하죠. 

그래서 막 이것저것 다 팔고 그래서 다 못 갚고 싼 밥집만 남았는데 남은 빚을 계산을 해보니까 20년 동안 벌어야 갚을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오더라. 

여기서 내 인생은 끝났구나 특별한 인간이라면서 이렇게 살았는데 난 아니었구나


또 자살 생각도 하고. 하지만 채권자들한테 무릎을 꿇고 빌었다고 하죠. 

내가 이 쌈밥집을 팔아가지고 나눠드리면 거기까지지만 이것만이라도 남겨주시면 반드시 빚을 다 갚겠습니다. 

이걸 운영해서 그래도 한참 걸린다고 생각을 했겠지 실제로 이게 가능할까도 싶었을 것 같고 그리고 나서 이제 식당 운영에 밤낮없이 매달리는 거죠. 

경비 아저씨한테 맞기도 하면서 전단지 직접 돌리고


또 직접 메뉴를 개발하고 손님들 관찰해가지고 필요한 걸 챙겨주고 그리고 쌈밥 그렇게 단가가 비싸지 않은데도 주차 서비스 근데 주변에 보면 사업이든 가게든 주식 투자든 뭐든 많은 경우에요. 

한 번 망하고 나면 새로운 시도를 잘 못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망했다가 일어나가지고 뭐가 좀 된다 싶으면 방어적으로만 나오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백 대표는 달랐어요. 쌈밥집이 탄탄하게 돌아가니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


주변에 권유가 있어가지고 근처에 유료 주차장 자리에 식당을 할 기회가 생겼는데 imf로 경기가 어려우니까 포장마차를 해보자 싶은 거야. 

상대적으로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도 올 수 있는. 

근데 생각보다 메뉴는 꽤 비싸요. 다만 종전의 포장마차와 달리 깨끗하고 크게 그것도 실내에서 해보자. 

그래서 잠도 잘 못 자고 낮에는 쌈밥집에서 일하고 밤 포장마차에서 일하고 그리고 실내 포장마차가 크게 성공하면서 2년 만에 이자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또 20년은 걸릴 것 같던 빚 갚는 속도가 차츰 빨라졌다고 하죠.


그러니까 스스로 선뜻 시작했던 사업이 아니라 뜻하지 않게 시작했던 어찌 보면 부끄러워까지 했던 식당 덕분에요 완전히 추락하지 않을 수 있 그런 식당 사업이 재기의 발판이 된 거죠. 

당시에 그 실내 포차 인기가 대단했어요. 

가 한신포 닭발이 특히 그리고 또 작은 공간을 활용하고 24시간 회전율을 높이고


포장도 가능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만든 분식집 해외 진출 고민 끝에 내놓은 우삼겹의 시초라는 고깃집 해물떡찜 낮에는 김치찌개 밤에는 대포집 컨셉으로 열풍을 불게 했던 식당 새마을 식당이죠. 

그리고 또 중국집에 카페 등등해서 백종원 대표는 자기 식당뿐만 아니라 이걸 프렌치 사업으로 키워서 승승장구했습니다.


누구든지 쉽게 만들 수 있게 나름대로 이 틀을 만들었는데 이 틀에 넣어서 밀어 넣으면 자연스럽게 똥모양이랑 똥튀김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대표가 직접 어렸을 때부터 단련된 입맛으로 국내외 구석구석을 돌면서 음식을 맛보고 또 외국 요리책 섭렵하고 먹어본 입맛과 요리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해서 스스로 메뉴를 개발하고 레시피를 만들고 또 식당과 매장 컨셉트 분위기까지 일일이 직접 정하고 또 해외 진출까지 추진하는 사업가적 기질도 계속 발휘하고 그렇게 해외 매장을 열었을 때는 또 외국 요리사들한테 현지 음식을 전수받고


연구는 하는데 책이나 이런 거 보고 연구하고 음식은 거의 100% 사 먹어요. 

저는 왜냐하면 항상 주관적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으로 돼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음식을 사 먹어봐야 손님 마음을 들을 많이 하니까 거의 모든 맥기 사 먹습니다. 

웬만한 일 아니면


그렇게 성공한 음식 사업가로 이름을 날리니까 여기저기서 백종원 대표를 찾았습니다. 

2천년대 초반부터 방송 출연이 점점 늘기 시작하고 특히 백종원이라는 이름을 남녀노소에게 각인시켰던 건 2015년 마리텔 때였던 것 같아요. 

기존과 달리 틀이 짜여져 있지 않은 방송에서 백종원 대표의 내공이 폭발했습니다. 

오죽했으면 그 해에 올해의 브랜드로 백종원이라는 인물이 선정되기도 했겠어요 이후에도 방송은 집밥, 백선생, 푸드트럭, 골목식당, 스트


푸드파이터 등등 다 잘 됐죠 사실. 그런데요 자료를 찾다 보니까 말이 될 때 백종원이라는 이름이 한 방에 빵 터진 것만 같잖아요. 

뭔가 하늘에서 갑자기 뭐가 툭 떨어진 것 같고 그런데 사실 그전에도 백종원 대표의 방송 출연이 고정적이지는 않더라도 계속 있었어요. 

2천년대 초반부터 계속 있었어. 드문드문. 

그러다가 고정이 되고 마리텔이 나오고 음식점의 시작 사업의 성공과 실패, 재기 그리고 음식점으로 크게 성공한 남다른 경험에다가요 10년 이상 짧은 방송 인터뷰도 해보고 긴 출연도 해


그러면서 쌓인 방송 경험이 더해지면서 이게 어느 순간 폭발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는 과정에서 백 대표는 사업의 방송을 이용한다 이런 비판도 듣고요. 

설탕을 너무 많이 쓴다 또 한편으로는 뭐 식당들 음식값이 싸긴 한데 수준이 너무 높지 않다 등등 여러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죠. 

근데 백종원 대표의 더본코리아 회사 목표에 이런 얘기가 나오. 

부담없는 가격에 푸짐한 음식을 맛보고 더불어 즐거움까지 느끼실 수 있는 한 끼 식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방송을 이용해서 자기 사업을 키운다는 비판 같은 경우에는요. 

저도 사실 주변 전문가들한테 평소에 드렸던 말 생각보다 어떤 영역이든 업계에서 진짜 전문가라고 인정받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근데 그런 분들이 미디어 노출을 잘 안 하려고 하세요. 

약간 그런 게 소위 쌈마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꽤 계시는 것 같고요. 

대중한테 알려주지 않아도 나 이미 충분히 잘 살고 있는데 내가 노출이 돼가지고


더 유명해질 수 있겠는데 이게 단점도 많은데 굳이 왜 내가 그런 글을 하시면서 그런데 생각을 바꿔보면 일단 탁월한 견해나 남다른 경험이 미디어를 통해서 전달이 되면 시청자들한테 도움이 되는 게 되게 그리고 많은 보통 사람들이 그런 경험에 대해서 들을 기회가 잘 없잖아요. 

누구나 잘 나가는 부모님, 잘 나가는 친척, 선배 이런 사람들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런 노출을 통해서 뭔가 기존에 통용되는 틀린 의견 같은 게 있다면 그런 건 또 고칠 수도 있고


그래서 진짜 잘 나가는 전문가들한테 이렇게 나오시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잘 안 나오죠. 

아무튼 그런 상황인데 사업에서 이미 성공한 경험이 있는 백종원 대표는 방송에 나와서 자신의 노하우를 전했던 거 그리고 노하우가 있는 것도 되게 어려운 일이지만 그 노하우를 재미있게 또 쉽게 전하는 것도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또 나온다고 또 다 좋아하고 또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잖


그러니까 사업가로서 백종원 대표가 평가를 받아야 하는 부분이라면 앞으로도 얼마나 사업을 잘 경영해서 회사와 가맹점, 고객 모두한테 가치를 주느냐 이런 것 같아요. 

이런 백종원 대표 이제는 고향의 전통시장을 한번 바꿔보겠다. 

그러면서 시작한 일을 자신의 채널 콘텐츠를 통해서 전달하고 있죠. 

백종원 대표는 자신의 목표를 얼마나 달성하고 전통시장을 어떻게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을까요? 또 사업가로서는 훗날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요?


평가는 시간이 지나면 또 차차 이루어질 거니까요. 

백종원 대표라는 인물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이분을 넘어서는 사업가들 또 기업인들이 사회에 계속 나오기를 바라면서요. 

과거 백 대표가 책에 남긴 말과 함께 이번 편 마치겠습니다. 

건축 사업 실패 후 식당으로 돌아왔을 때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고


식당 덕분에 다시 일어서게 됐을 때 겸손은 자신감으로 변해 있었다. 

내가 선택한 길인지 그 길이 나를 선택한 것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이 제일 잘하는 일이며,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내 삶을 즐겁게 만든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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