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한 정치인들 중에는 치어리더 출신들이 많습니다.
직관 좀 다녀봤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각 구장마다 어떤 자리가 치어리더 응원석과 가까운 꿀자리인지 정보를 공유하기도 합니다.
전쟁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탄생한 이유를 밝혀드립니다.
저는 역사학자 김재원이고요. 폼 스토리 오늘의 주제는 치어리더입니다.
올해 3월쯤 치어리더 이다해 씨가 대만 프로야구 치어팀으로 진출해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신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얼마나 인기인지 대만에서 인기 있다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셨고요 글로벌 브랜드인 코카콜라 대만 광고 모델로도 활약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이다희 씨처럼 스포츠 경기장 안팎에서 선수들만큼이나 주목받는 이분들 치어리더는 말 그대로 관중들의 응원을 이끄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이제는 자신만의 매력과 끼를 발산하면서 각종 매체에서 치어 테이너로 활약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의 경우 주로 야구나 농구, 축구, 배구 경기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요.
이 관중석 앞쪽에 응원석이 마련되어 있고, 경기 중이나 쉬는 시간에도 열띤 춤사위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실 치어리더의 종주국으로 알려진 미국의 경우에는 흡사 고개처럼 느껴지는 묘기들로 구성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스턴트 치어리딩 스타일이 강세입니다.
그에 비해 한국은 응원가나 구호에 맞춰서 춤추는 댄스 위주의 스타일이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
아무튼 경기를 응원하는 스포츠 팬들도 이 치어리더와 함께 응원하는 것을 즐기는 듯 합니.
그래서 직관 좀 다녀봤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각 구장마다 어떤 자리가 치어리더 응원석과 가까운 꿀자리인지 정보를 공유하기도 합니다.
그거예요 전쟁입니다. 그 대포 들고 오시는 분들 아니 아니 저거 저런 거 아니에요 진짜 대포 들고도 오시는 분들 있고 또 잠실 야구 경기장의 경우에는 아예 치어리더 응원석에 가장 근접한 자리들을 익사이틴 존이라고 구별해서 티켓을 판매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응원석의 스타들로 활약 중인 치어리더들은 사실 대부분 여성들입니다.
남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응원단장 역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그래서 여러분들도 치어리더를 떠올리면 막연하게 여성의 직업이라고 생각하실 텐데요.
그런데 이 직업이 탄생할 당시의 인식은 지금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최초의 치어리더는 사실 남성들이었기 때문인데요.
때는 19세기 말 미국에서의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대학마다 각종 스포츠팀들이 유행처럼 우후죽순 생겨났거든요.
자연스럽게 학교들끼리 경쟁하는 경기도 자주 벌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응원 문화라는 것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소리를 치거나 박수를 치는 정도였지 뭐 따로 응원 문화가 이렇게 형성이 됐다거나 이제 그런 건 아니었던 거죠.
그런데 이때 미네소타 대학에서 관중들의 응원 소리를 하나로 모아서 선수들의 사기를 높여주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그래서 응원을 앞에서 이끄는 사람들 그러니까 이 치어 리더를 뽑게 된 겁.
그런데 이 치어리더라는 역할이 대학 전체의 응원을 지휘하는 자리다 보니까요.
당시의 시대상에서 여자들이 치어리더가 되기는 힘들었어요.
오히려 카리스마 있게 리더십을 발휘하는 건 남자들의 몫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인데요.
그런 분이기 때문에 어떤 학교든지 선발된 치어리더들은 모두 남학생들이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미국의 유명한 정치인들 중에는 치어리더 출신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미국의 전 대통령들 루즈벨트 로널드 레이건 드와이트 하이제나워 조지부시 같은 사람들이 치어리더 출신입니다.
하지만 치어리더가 남성의 역할로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가지는 못했는데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2차 세계대전으로 대다수의 남성들이 전쟁에 참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치어리더 대표적으로 어떤 분들이 떠오르십니까? 박기량 안지현
허연수 김인 하지원 김진아 김한나 최홍 아예 모르는 척 그렇게 하고 계시면 그런데 이분들의 공통점은 각종 스포츠 프로구단을 응원한다는 점이겠죠 당연히 그렇다면 각각의 프로구단들이 이렇게 고유의 응원단을 가지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한국의 치어리더 역사는 1982년 프로야구의 출발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보다 앞선 1975년에 롯데자이언츠에서 실험야구단을 출범할 때, 롯데 엔젤스라는 응원단을 함께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지금의 치어리더와는 조금 다르게 타 악기나 관악기로 음악을 연주하는 고적대 역할을 했었어요.
이거 그거 아닙니까? 아무튼 프로야구가 시작되면서부터는 흥행을 위해 선수들의 사인전을 한다든지, 각 구단별로 귀여운 마스코트를 선보이는 등 홍보전을 벌였었는데 치어리더도 야구 경기의 재미와 몰입도를 더욱 높여주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어.
물론 지금처럼 화려한 군무나 체계적인 응원은 아니었는데요 경기의 승패를 떠나서 응원전의 재미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프로야구와 치어리더들이 꾸준히 인기를 끌게 되면서, 그 영향으로 축구나 농구, 배구 같은 종목에서도 치어리더를 동원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프로리그가 출범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치어리더 팀들도 함께 자리를 잡게 됐습.
예외적으로 축구의 경우, 구단별로 서포터즈가 응원을 주도해 왔기 때문에 전속 치어리더를 기용하지 않았었.
하지만 이런 불문율도 치어리더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높아지면서, 2010년대에 들어서면 서포터즈와 별개로 치어리더도 응원석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또 프로 경기들의 현장이 아니더라도 각종 아마추어 경기나 기업의 사원 체육대회 같은 행사에 치어리더를 파견해달라고 이벤트 업체마다 문의가 쇄도하기도 했다고.
치어리더에 대한 개념이 점차 자리를 잡고 관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지금처럼 치어리더 개개인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된 거는 2천년대 이후의 일입.
특히 각종 영상 장비라든지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이 사진이나 영상을 마음껏 찍어 공유하는 직켓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치어리더 개개인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이 스포츠 경기를 직관하는 것이 아니면 사실 치어리더들의 응원전을 자세히 볼 기회가 적었잖아요.
그런데 스포츠 팬들도 직캠이 가능해지면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치어리더들을 온라인상에 소개할 기회가 많아진 거.
이런 계기로 일부 치어리더들은 경기장의 선수들 못지않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 영향으로 인기몰이를 하는 치어리더들은 tv나 광고, 사람들의 눈길이 닿는 곳곳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됐습니다.
또 한편에서는 이 체조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턴트 치어리딩이 2016년부터 ioc로부터 올림픽 잠정 종목으로 인정받게 됐습.
국내에서 댄스 위주의 치어리더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스턴트 치어리더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
이제는 어느 스포츠 무대의 조연이 아니라 당당히 하나의 스포츠 종목 선수로 인정받을 수.
머지않아 치어리딩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다면 당당하게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국가대표로서 기량을 뽐내는 모습을 만나볼 수 있을 겁니다.
몇 년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인천의 자랑이라는 pc방 알바생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게시물이 화제가 됐습니다.
업로드된 사진의 주인공은 당시 프로농구에서 인기몰이를 하던 치어리더 김미서 씨였습니다.
인기 치어리더가 돌연 pc방에 등장한 이유도 이 게시물에 같이 설명이 돼 있었는데요.
팬데믹 상황이 길어지자 치어리더로 활동할 수가 없어서 다시 응원석에 설득
버티기 위에 모아둔 적금까지 깨면서 아르바이트를 추작했다는 내용이었.
이렇게나 응원의 진심인 치어리더들 이들이 없는 경기장은 상상만 해도 어색할 것만 같습니다.
치어리더에 대한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저는 또 다른 탄생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대표 되시는 분들만 아는 거지 제가 뭐 관심이 있다거나 그런 거는 축구팀이 원래 없었어요.
최근 들어서 팀마다 뽑기 시작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