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스의 사나이, 챔스의 신이라 불리었던 전설적인 7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야기 > 이슈

본문 바로가기

메인페이지로 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이슈

챔스의 사나이, 챔스의 신이라 불리었던 전설적인 7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야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admin
댓글 0건 조회 175회 작성일 23-10-02 02:46

본문

a04d6c3f544e63987f6e2d2ba516073a_1696182357_4474.png
 


사람들이 꽉 찬 경기장 그리고 긴장한 듯 서성이는 한 사람 그의 이름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1985년, 포르투갈에서 떨어진 작은 섬, 마데이라에서 태어난 가족의 네 번째 아이는 곧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호날두의 유산을 시도했을 정도로, 호날두의 집은 매우 가난했죠. 
가난한 마데이라 동네에서도 가장 열악한 판자촌에서 청소부 어머니가 일을 하며 벌어들인 얼마 되지 않은 돈이 여섯 식구 생활비의 전부였습니다. 
심지어 호날두의 아버지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였죠. 
전쟁으로 인한 분노를 지우지 못해 늘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이런 호날두를 위로해줬던 유일한 친구가 바로 축구였습니.

공을 차는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두려움과 걱정도 모두 사라졌었죠. 
그렇게 아버지가 유니폼을 세탁한다는 이유로 또래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시작했던 축구는 점차 소년의 작은 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남들보다 특별한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호날두는 순식간에 마데이라의 스타가 되어버리죠.

마데이르가 낳은 작은 천재에 관한 이야기는 금세 포르투갈 본토까지 닿게 됩니다.

그렇게 호날두는 12살에 고향을 떠나 수도 리스본으로 향하게 되죠.

하지만 도착한 리스본은 마데레와 전혀 다른 낯선 환경이었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린 호날두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매일 밤 눈물을 흘렸죠.

심지어 억양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래들에게 따돌림을 당해야 했던 호날두는, 학교 선생님마저 자신의 말투를 놀리자, 결국 의자를 던져 퇴학까지 당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15살이 되었을 무렵, 심장 수술을 받아야 했고, 너무나 고달프고 힘든 생활에 축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하게 되었죠. 
하지만 어떻게든 넘어지면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칭얼대기보다 적응하고 살아남는 법부터 먼저 배워야 했던 호날두는,

한 번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선, 피나는 노력과 모든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임을 알고 있었죠. 
그렇게 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자존심 강한 성장기를 보낸 호날두는,

불과 16살에 1군 훈련에 참여하여 곧 주전 선수로 뛰게 되었으며, 그의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그저 기대받는 유망주에서 동나이 때 가장 주목받는 선수이자 스포르팅 최고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호날두는 자신의 인생을 바꾸게 될 한 경기를 치르게 되는데, 그 상대가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죠. 
그리고 이날, 호날두는 홀로 맨유를 휘저으며,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스포르팅의 원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이 경기로 호날두의 잠재력을 확신하게 된 맨유의 퍼거슨 감독은,

후반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호날두의 영입을 결정하게 되죠. 
그렇게 마데이라 출신의 17살 소년은

동나이 때 유례 없는 이적료로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됩니다. 
이적이 확정되자, 호날두는 곧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했죠.

입단한 호날두의 등번호는 바로 7번이었습니다. 
맨유 전설들의 계보를 읽는 번호였기에, 그저 어린 유망주에 불과한 호날두에게 7번을 준 것은 이례적인 결정이었죠. 
호날두 역시 7번의 역사를 알았기에 다른 번호를 원했지만, 퍼거슨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물론 맨 위에 7번 셔츠를 입고 실제로 경기에 나서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죠.

그러나 동시에 이런 부담감을 이겨내는 것이 새로운 7번인 호날두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곧 호날두는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기 시작했죠. 
스포르팅 때와 마찬가지로 현란한 개인기를 선보였고, 심지어 그날 pk까지 유도하며,

마치 퍼거슨의 말을 증명하듯 천재성을 발휘하면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물론 데뷔 초 때로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개인기를 좋아하는 성향 탓에 무리한 돌파를 자주 시도했고, 결국 그로 인해 팀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죠. 
그래서 당시 맨유의 고참 선수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었는데요. 그리고 툭하면 넘어지는 다이브행이 때문에 일부 팬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때아닌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죠. 
하지만 이런 비판이 있을 때마다 퍼거슨이 언제나 직접 나서서 호날두를 변호해 주고,

그의 든든하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죠. 
그렇게 매일 아침 프리미어리그에 적응하기 위해 호날두는 훈련장에 제일 먼저 도착해 제일 늦게 훈련장을 떠나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꽃 허걸슨의 믿음에 보답하듯 무서운 성장세를 보여주기 시작했죠. 
모든 비난을 잠재웠고, 날이 갈수록 자신이 왜 메뉴의 7번인지를 증명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좋은 활약을 펼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죠. 
호날두는 꿈꾸고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가 되고자 하는 꿈이었죠.

그런데 호날두가 20살 될 무렵이었던 2005년 9월 6일,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호날두는 이 소식을 월드컵 예선 경기 전날인 국가대표팀에서 듣게 되었죠.

호날두는 경기에 뛰고 나서 아버지의 장례식에 도착하게 됩니다.

비록 많은 대화를 나눠보진 못했지만, 아버지의 부재는 호날두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 
특히 자신의 성공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한 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버렸다는 사실은 호날두에게 마음의 짐으로 남았죠.

그렇기 때문에 다가오는 자신의 첫 월드컵은 호날두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바치는 대회였기에, 반드시 좋은 성적으로 월드컵을 마무리하고 싶어했죠. 
그런데 8강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호날두가 소속팀 동료 루니의 퇴장을 심판에게 유도하고,

결국 루니가 퇴장을 당하자 누군가에게 윙크를 날리는 모습이 그대로 카메라에 포착됩니다. 
또 하필이면 호날두가 마지막 키커였죠. 
호날두는 아버지를 향한 감동적인 세레모니를 했지만,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봤던 패배한 잉글랜드 팬들의 분노는 호날두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호날두는 잉글랜드 최고의 빌런으로 등극하게 되죠.

호날두는 문제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잉글랜드의 모든 언론들은 호날두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팬들 역시 등을 돌린 상태였습니다. 
심지어 살해 협박까지 받게 된 호날두는 맨유에 돌아오기를 꺼려했죠. 
클럽을 떠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호날두에게는 데거슨, 아니 퍼거슨 감독이 있었습니다. 
퍼거슨은 이 상황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이미 알고 있었고, 재빨리 호날두에게 연락을 취해 그를 격려하며 안심시켰죠.

물론 처음에는 퍼거슨의 말처럼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호날두는 경기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했고, 오히려 5년 재계약을 박아버렸죠. 
호날두를 떠나지 않게 설득한 일은 곧 퍼거슨의 또 다른 업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호날두는 입단한 이래 최고의 활약을 펼치게 됩니다. 
지난 시즌에 두 배에 가까운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야유를 환호성으로 바꿔버렸죠.

그리고 다음 시즌,

지난 시즌을 압도하는 활약으로 많은 2골을 기록했고, 모든 면에서 기존의 모습보다 한 차원 진화된 모습으로 프리미어리그를 박살 랭킹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호날두가 각성하기 시작한 뒤, 맨유는 약 4년 만에 리그 타이틀을 탈환하고 파죽지세로 두 번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되죠. 
여기서 더 나아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맨유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됩니다. 두 대회 득점왕을 석권하고 파멸적 활약을 보여준 호날두는, 자신이 되고자 했던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면서 커리어 첫 발롱도르를 수상하게 됩니다.

유럽을 정복했던 이 당시가 겨우 스물두 살의 나이였죠. 
사람들은, 아니, 전 세계가 호날두에게 열광했습니다. 
모든 잡지의 커버를 장식했고, 축구계를 매료시키면서 메가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지만, 7번은 이제 호날두를 상징하는 숫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맨유가 호날두를 더 이상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정확히 1년 뒤, 당시 역사상 최대의 이종은 약 1300억으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됩니다. 호날두의 입단식이 열리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는 이 한 사람을 보기 위해 자그마치 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죠. 
종전 마라도나 기록을 뛰어넘어버린 금세기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마침내 레알 마드리드의 흰 유니폼을 입고, 공식적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가 된 크리스티아는, 호날두는

자신의 시대가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죠. 
그리고 시즌이 시작되자, 마치 적응 기간은 필요가 없는 호날두는 맨 위에 있을 때보다도 더 물오른 득점 감각을 보여주었습니다. 
2시즌 동안 88골을 넣으면서 리그를 폭격했죠. 
하지만

수많은 골들에도 불구하고, 팬들과 구단 수뇌부들은 전혀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거듭되는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부진 때문이었죠.

과거부터 레알 마드리드에게 챔피언스 리그 타이틀이란 레알 마드리드를 상징하는 트로피이자, 자신들의 유럽에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보여주는 왕좌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렇게 호날두를 데려온 것 또한, 레알 마드리드의 핵심 목표이자 당면 과제인 10번째 챔스 우승, 라데시마의 달성과 관련이 있었죠. 
하지만 호날두를 영입한 후에도 여전히 마드리드는 우승은 커녕 광타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같은 리그 경쟁자이자 최대 라이벌인 바르셀로나가 전성기를 맞고 미쳐 날뛰면서 모든 우승컵을 들어올리기 시작해 더욱 대비가 되고 있었죠.

그렇게 바르셀로나에게 모든 팀들이 정신없이 털리는 가운데, 또 하필이면 레알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에게 무려 5대 0이라는 스코어로 대참사를 당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력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팀을 호날두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죠. 
결국 이 시기, 그토록 많은 골을 넣었음에도 호날두는 결국 리오넬 메시의 4연속 발롱도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일은, 자신이 레알 마드리드에 올 때만 해도 상상치 못했던 고력적인 전개였죠.

그런데 그 와중에 언론과 미디어들은 호날두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거의 광적일 정도로 그의 사생활을 파헤쳤고, 정도를 넘는 행각들은

호날두를 지치게 만들었죠. 가장 좋은 기삿거리는 메시와의 비교였습니다. 
특히 제프 블래터 피파 회장이 공개된 석상에서 둘을 비교하면 호날두를 조롱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이 사건은 호날두의 자존심을 건드리게 됩니다.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운다는 말이 있듯, 엄청난 연습과 혹독한 관리에 돌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중압감과 온갖 종류의 압박들, 이 모든 것들은 오히려 호날두의 자극제가 되어버렸죠.

마치 자신이 세계 최고라고 주장하듯 미친 듯이 골을 퍼붓기 시작하더니,

한 시즌에만 60골을 득점하는 괴물 같은 기록을 작성하고, 그 해 가장 많은 득점을 한 선수로 이름을 올리게 되죠.

한순간에 골망을 가르는 중거리 슈퍼,

인간을 뛰어넘은 긴 체공시 손을 제외한 모든 부위로 득점을 만들어내면서, 이후 두 시즌 동안 호날두는 무려 106골을 집어넣는 괴력을 발휘합니다.

더불어 바르셀로나에겐 약하다는 말이 무색하게, 3루 원정에서 여섯 경기 연속 득점 행진을 이어가죠.

그리고 모든 마드리드 스타가 염원하던 챔피언스 리그에서

11경기, 17골, 역대 최다 골 기록을 갈아치우며 경이로운 퍼포먼스를 보여준 호날두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10번째 챔스 트로피 라데시마를 안겨주게 됩니다. 
그렇게 호날두는 2년 연속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다시 한 번 최고의 자리에 올랐죠.

하지만 기쁨은 잠시, 호날두는 월드컵을 한 달 앞둔 상황에서 치명적인 무릎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자국에서 열린 유로 2004에서 첫 메이저 대회를 데뷔한 호날두는

결승전에서 아쉽게 패배를 당하며 뜨거운 눈물을 삼켜야 했죠. 
그날 이후로 조국 포르투갈을 우승으로 이끄는 것이 호날두의 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클럽 커리어와는 달리, 메이저 대회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승과는 영 인연이 없었죠. 
어떻게든 꿈을 이루기 위해 부상의 위험을 감수하고, 결국 월드컵 출전을 감행했지만, 호날두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또다시 포르투갈은 끔찍한 탈락을 맛봐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부상을 감수하며 월드컵에 출전했던 선택은 스스로에게 독이 되고 말았죠. 
몸은 무겁기 그지 없었고, 부상은 리그 경기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호날두를 향한 레알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죠. 
그 뒤로도 호날두의 경기력이 좋지 못할 때마다

거침없는 야유가 쏟아졌죠. 물론 야유는 스페인에 올 때부터 호날두에게 아주 익숙했습니다. 
특히 원정 경기가 있는 날이면, 경기장은 상상을 초월한 온갖 모욕적인 말들로 도배가 될 정도였죠. 
원정 팬들에게 비난을 받는 거야. 워낙에 익숙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홈 팬들의 야유였습. 
불과 한 해 전에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야유하는 데 있어 거리낌이 없었죠.

유럽의 왕이라는 자부심 그 자부심은 마드리드의 선수라면 모든 경기에서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줘야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어떤 선수든 가차 없이

채찍질을 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특히 팀의 에이스를 맡고 있는 호날두에게 유독 야유는 집중됐죠. 
참다 못한 호날두는 팬들에게 제스처를 취하기도 해보고,

직접적으로 인터뷰를 통해 야유를 멈춰달라고도 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경기장 위에 한 메뉴 팬이 띄어올린 집으로 돌아와 호날두라는 메시지는 호날두의 마음을 흔들어 놓게 되죠. 
하지만 자신이 메뉴에서 그토록 사랑받았던 이유는 야유에 움츠려드는 모습이 결코 아니었죠.

언제나 그랬듯, 야유를 환호성으로 바꾸고 부담감을 이겨내는 것은 7번 호날두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2015년에 펼쳐진 챔스는 호날두의 동무대나 다름없었죠.

보란듯이 원정골을 놓고 팀을 8강으로 이끈 호날두는 다음 경기 두 골 차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2차전 호날두는 1차전의 패배를 헤트트랙으로 뒤집으며 마법 같은 밤

만들어 냅니다. 결국 1년 만에 레알 마드리드는 챔스 우승을 차지하며 왕의 자리를 다시 탈환하죠.

마무리

그리고 불과 몇 주 뒤 유로 2016 결승전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인해 호날두는 경기에 뛸 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동료들이 있었죠. 
결국 포르투갈은 역사상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이뤄내고, 호날두는 자신의 어릴 적 꿈을 이루게 됩니다. 
챔스 우승과 동시에 우승컵을 조국에 안겨준 호날두는 그야말로 최고의 한 해를 보내게 되죠.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는 2016년 우승 이후 연달아 2017년과 2018년 두 번의 우승을 더하며 역사상 최초의 챔스 3연패를 달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당연히 호날두가 있었죠. 
토너먼트에서 만나는 모든 팀을 모조리 로그아웃 시키며 무려 6년 연속 챔스 득점왕을 차지하고, 챔스 역사상 최다골과 최다 어스트를 기록하며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챔피언스 리그의 사나이 또는 챔스의 신이라 부르게 됩니다.

이후 유벤투스를 거쳐 호날두는 맨체스터로 돌아오게 되죠.

늘 최고가 되고자 했고, 끝없이 자신을 깎아내우며 별들의 전쟁에서 가장 빛나던 별이 되었던 사나이는 어쩌면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훈또랭크(juntorank) 는 다양한 포털사이트 또는 커뮤니티에 있는 다양한 링크들을 수집하여 유저분들께서 원하시는 사이트들을 보다 쉽게 찾을수 있게 분류별로 모아 놓았으며 인기도, 방문자 등으로 랭크를 매기고 있습니다. 훈또랭크 에서는 그 어떤 영상파일,음원파일도 저장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훈또랭크에서 공유하고 있는 모든 링크에 대한 편집 또는 수정을 하지 않습니다. juntorank.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