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앞에선 누구도 무사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이름까지 워어바르머라 하면 윈터에 가까워 그녀가 다가오는 것 그 자체가 공포의 존재라고 할 수 있죠.
그녀는 모든 명품 브랜드 패션쇼 초청 리스트 0번이며, 그녀가 추청된 패션쇼에 그녀가 나타나지 않으면 쇼 자체가 시작 되지 않으며, 패션쇼가 열리는 순서를 바꾸자고 하면 패션쇼 순서가 바뀌어 버립니다.
패션계의 교황 혹은 악마라고 불리는 그녀 안나 윈투어는 어떻게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
안나 윈투어는 194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매우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영국의 유명 잡지인 이브닝 스탠다드의 편집장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에 그녀는 어려서부터 미디어 매체와 매우 친숙했는데요.
일찍이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딸을 위해 안나의 아버지는 헤로즈 백화점 등 다양한 부티크에서 일할 수 있도록 그녀에게 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이후 그녀는 사귀던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잡지사에도 발을 들이게 됩니다. 오지라는 잡지사를 거쳐 세계적인 패션 매거진인 하퍼스에 취직한 그녀는 이때부터 패션계의 인맥을 넓히게 되는데 안다는 이때 자신의 최종 목표를 패션 매거진계의 가장 끝판왕 보그의 편집장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가 모여 있는 곳은 역시 뉴욕입니다.
타임, 뉴욕타임즈, 포브스 등의 미디어가 모두 뉴욕 혹은 뉴저지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요 패션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보그는 전 세계에서 각 나라의 언어로 발행되지만 그 중심에는 역시 뉴욕이
보그의 영향력은 패션계에 있어서는 성경과 같은 존재로 취급받습니다.
안나의 별명이 교황이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붙은 것이죠.
안나는 영국 하퍼스, 미국 하퍼스, 비바, 세비를 거쳐 결국 미국 도교에 입성하게 됩니다.
그녀의 일 능력은 누가 봐도 나무랄 데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대인관계 능력은 거의 트러블 메이커 수준이었는데요.
엘리트주의의 일에만 포커스 되어 있는 그녀의 성격은 그녀가 보스일 때는 괜찮을지 몰라도 상사가 있을 때에는 문제를 일으
느끼게 됩니다. 상사들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밀어붙이는 안나가 마음에 들 리 없었죠.
그래서 그녀는 대부분 상사와의 갈등으로 문제를 일으키며 이곳저곳 직장을 옮기게 됩니다.
1988년 그녀의 나이가 마흔이 되기 전 드디어 그녀는 오랜 꿈이던 미국 보그의 편집장이 됩니다.
그리고 칠순이 넘은 지금까지 30년이 넘게 그녀는 보그의 수장으로
전 세계 패션계를 호령하게 됩니다. 잡지 편집장이 어떻게 패션 업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냐고 생각할 그녀가 보그 편집장을 맡은 시기가 80년대 후반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유행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가 바로 잡지였을 때죠.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는 잡지 중 하나인 보그에 실린다는 것은 그 브랜드가 유행의 최전선에 있다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이 유행은 일반 대중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 패션 잡지의 편집에서부터 나오게 되는 것이었죠.
보그에서 이번에 스키니가 유행할 것이다 라고 밀어붙이면 사람들은 그럼 나도 스킨이 좀 입어볼까 하는 것이고, 이번에 아이템은 데님 자켓이
라고 하면 데님 자켓이 팔리는 시기였죠.
반대로 좀 유행을 타는 패션을 아예 매장시킬 수도 있는데요.
일례도 한때 힙 피를 입는 빈티지 복장인 그런 지독을 사람들이 좋아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나는 이 그런 지독을 좋아하지 않았는데요.
그녀는 아예 모든 브랜드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시즌부터 그런 지요소는 모두 빼달라고 이야기합니다.
만약 그런 지요소가 들어간 브랜드는 보그에서는 볼 생각도 하지 말라는 팁과 함께요.
모든 브랜드는 그런지 요소를 빼기에 이르렀고, 결국 더 큰 유행으로 번질 뻔했던 그런즈로군 오빠도 한물 간 유행이 돼버렸죠.
하지만 안나의 취향은 상당히 날카로웠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패션쇼에 참석한 후 미소를 지은 브랜드는 대박이 나고, 무표정으로 패션쇼를 떠난 브랜드는 그의 시즌 쪽박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죠. 거기다 안나가 관심을 보이고 이야기를 나눈 디자이너는 세계적인 거물이 되는데요 그녀가 지원해 슈퍼스타로 거듭나게 된 디자이너는 톰포드를 비롯해 마크제이 곱, 마이클 코어스, 존 갈리아노 등 여럿이 있습니다.
여기다 인맥도 장난이 아닙니다. 슈퍼모델, 배우, 가수 셀레브리티는 물론 오바마 부부나 클란틴 부부 등의 미국 대통령, 보터,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까지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의 화려한 시상식 드레스를 만들어줄 디자이너를 섭외해 줄 수 있고, 이는 그녀가 패션계의 절대 권력으로 사로잡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런 그녀의 재산은 약 6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보그에서 매년 40~50억 수준의 연봉을 받으며, 에스클래스와 기사가 따라붙으며, 20만 달러 내에서는 마음껏 쇼핑할 수 있는 쇼핑 카드, 그리고 패션쇼에 참가할 때 최고급 호텔에서
숙박을 할 수 있는 경비가 제공됩니다.
그녀가 파리 패션쇼에 참가할 때 즐겨 찾는 호텔은 파리스의 코코샤넬 스위트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 방의 숙박료는 1박에 약 13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일주일 먹으면서 이것저것 하다 보면 1억은 금방 날아가겠네요.
거기에 회사에서는 그녀가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말 그대로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할 수 있는 개인 비서를 지원해 주는데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도 실제 안나 윈투어의 비서로 일하던 로덴 와인스버거가 썼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것입니다.
영화에서 보면 안나는 매일 같은 커피를 스타벅스에서 사오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녀들이 해리포터의 신간을 누구보다 빨리 읽을 수 있게 구해오라는 주문 등 일반 비서가 하기에는 어마어마한 일들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일을 배울 수 있고, 여기서 일을 잘 해낸다면 패션계의 거물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많은 고학력자, 비서, 지원자들이 넘쳐난다고 하네요.
또 안나는 뉴욕 내에서도 부촌에 속하는 그리니치 빌리지의 아파트에 머물고 있는데요 겉에서 얼핏 보면 평범한 집 같아 보이지만 이곳은 밥 딜런 같은 전설들도 지나친 고급 타운하우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지금도 매일 저녁 10시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 6시에 일어나 테니스를 치고 난 후 머리와 메이크업을 하고 8시면 출근을 하는 루틴을 지켜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나는 통신 분야의 억만장자인 쉐비 브라이언과 2004년에 결혼해 2020년까지 결혼 생활을 이어왔는데요.
쉐비 브라이언의 재산은 2천억 원이 넘습니다.
하지만 70의 나이로 안 나는 결혼 생활에 종지부 찍었는데요 그녀는 현재 빌나이와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바로 러브 액츄얼리와 어바웃 타임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그 아저씨입니다. 어쨌건 이 둘은 거의 10년간 불륜과 연애 의혹을 받고 아직 그들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습니다.
이제는 모바일과 인터넷 그리고 sns의 발달로 패션 잡지가 주는 영향력은 이전보다 훨씬 못하지만, 안나 윈투어는 한결같은 뱅헤어와 어두운 선글라스, 그리고 워크홀릭의 모습으로 여전히 패션계의 큰 별입니다.
그녀의 영향력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