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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제발전의 핵심이 된 KT & G 어떻게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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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댓글 0건 조회 32회 작성일 24-10-1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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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만병통치학으로 알려져 백성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인기 아이템으로 떠올랐다가 일제 강점기 동안에는 경제적 이득을 위해 부당하게 이용당했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담배인데요. 또 해방 이후에는 놀랍게도 대한민국 경제 재건의 핵심 산업으로 발전하며 국가 경제 발전의 주춧돌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브랜드 백화사전의 주제는 우리나라 담배 산업을 이끌어온 KT & G입니다.


인조실록에 의하면 한반도에 담뱃잎이 처음 들어온 시기는 1616년에서 1617년 사이로 처음에는 그리 주목받는 작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621년에서 1622년에 이르러서는 조선 팔도의 담배.

그 당시에는 남초라고 불렀는데 남초를 태우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전해질 만큼 우리 민족은 순식간에 애언의 민족이 되었습니다.

담배가 빠른 시간 내에 대중화된 대에는 그 당시 담배가 오히려 약초로 알려져 만병 통치약이라는 소문으로 인해 널리 전파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렇게 담배의 인기가 높아지자 주 산지를 중심으로 담배 파이는 곳곳에서 성행하게 되었는데요.

덩달아 담배를 경작하는 농민도 이때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민족의 담배 사업은 소규모 경작으로 시작해 대규모 농장으로 확대되기까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되었죠.


그런데 조선 후기에 들어서 장유, 구안, 이규경 등의 학자들이 범상치 않은 담배의 파급력에 이것을 아예 국가 재정 수입의 중요한 수단으로 만들면 어떨까라며 조정의 건의를 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연초세였습니다. 특히 구안이라는 사람은 담배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영향력이 심상치 않다 여겨 아예 국가에서 전매할 것을 강력히 제의했죠.

그렇게 담배는 조선 후기부터 국가의 중요한 특용 작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던 1876년 우리 민족은 개양기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당시 개화파 인사들은 담배의 경제적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에 따라 근대적 연초 제조소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고 그 결과 최초의 근대적 담배 제조회사인 수화국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순화국은 오늘날 KT & G의 시초가 되었는데요.


1883년 설립된 순화국은 담배 제조와 수출을 통해 국부 유출을 막고 국내 시장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또 국산 담배의 품질이 결코 외국산 담배에 뒤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담배 산업은 생각보다 일찍 성장기를 맞이하는 듯 했죠.

하지만 1910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면서 우리나라의 담배 사업은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조선총독부가 탁지부 산하에 전매국을 설치하면서 담배 산업은 일본 정부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는데요.

이후 담배산업은 일본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부당하게 이용당했고, 이 시기는 우리나라 담배산업 발전사에 있어 가장 큰 암흑기로 기록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해방을 맞이한 우리나라는 새로운 국가 체제를 구축하고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게 되는데 이때 담배 산업이 큰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정부는 일제 산하의 전매국을 폐지하며 새로운 전매 조직을 설립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재무부 산하의 전매청이었습니다.

1952년 설립된 전매청은 담배, 소금, 인삼 등을 독점적으로 관리, 판매하는 부서로 중앙에 본청을 두고 각 지방에 전매 지국을 설치하여 전국적인 전매 체계 및 시스템을 갖추었죠.

전매청은 담배의 재배 과정부터 수확, 가공, 포장까지 모든 단계를 철저히 관리했습니다.

또 담배를 수확하는 재배 농민에게도 국가 면허를 부여하며 체계적인 재배가 가능하도록 하였죠.

뿐만 아니라 전매청은 담배 재배 농민들의 경제적 안정과 복지를 위해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기 위해 고정된 가격에 담배를 구매했습니다.

이를 통해 농민들은 경제적 불안을 해소하며 빠르게 안정적인 생활로 복귀할 수 있었죠.

그 결과 1959년 대한민국은 처음으로 서독에 잎담배를 수출할 만큼 주체적인 국산 담배 생산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는 산업화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는데요.

정부는 이에 맞춰 경제개발 5개넌 계획을 수립하여 경제의 근대화와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담배산업은 중요한 세수원 중 하나였고 이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담배 산업의 현대적인 제조시설이 필요하다 판단했죠.

게다가 사회가 활기를 띠고 대중의 기호가 다양화되면서 담배 사업도 점차 양적, 질적인 면에서 큰 변화와 발전이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이에 정부는 담배 산업의 현대화를 위한 생산시설을 본격적으로 확충하고 제조 담배 연구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게 됩니다.

제조 담배의 맛과 품질을 구성하는 요소는 원료, 잎담배, 향류, 재료 등으로 좌지우지된다고 하는데요.

담배의 향미와 물리성을 고려한 제조 과정 개선과 품질 향상, 신제품 개발, 원가 절감을 위한 제조 기술 연구는 사실 해방 이후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최초의 필터 담배인 아리랑을 1958년도에 개발해 데히트를 쳤고, 1961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박하 담배인 금관이 개발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신제품 개발을 위한 담배 연구 시설이 굉장히 열악한 데다 인력도 부족하여 한계가 분명했죠.

그에 따라 1962년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넌 계획을 발표하며 담배 산업을 더욱 보강하기 위해 신탄진 연초제조창의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신탄진 연초제조창은 주요 여연초 생산지와 인접한 지역에 위치해 있었으며, 경부선 철도와 연결되어 원료 공급과 제품 수송에 유리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담배 원료는 담배 품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원료 생산 시설을 확충하는 데 박차를 가하기로 한 것이죠.


그렇게 1965년 신탄진 연초제조창이 준공되면서 국내 담배 생산 능력은 크게 향상되었고, 이를 통해 전매청은 담배 생산을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담배 산업의 성장을 지속시키기 위해 1968년부터는 기술직이 연구직으로 개편되어 연구 업무에 대한 노력이 배가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입담배 배합 기술 향상, 잎담배 발효 연구 등에서 큰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죠.

이러한 생산시설의 개선과 확충은 국내 제조 담배 생산 능력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듯 품질 개선과 생산력을 확충한 우리나라 담배 산업은 본격적으로 국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며 서독, 영국, 미국 등 다양한 국가로 수출을 크게 확대하는 기반을 마련합니다.

1971년 1400만 달러였던 수출 금액은 1977년에 무려 1억 달러의 수출 금액을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눈부신 발전을 이뤄나가던 국내 담배산업은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나게 됩니다.


생산시설 확충 등으로 담뱃잎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늘렸지만 1980년대부터 급격히 확산된 금연 운동, 건강을 의식한 애원가들의 절연, 소비자 보호 단체들의 활동과 이에 따른 직장 내 금연 확산 등으로 담배 소비의 신장률이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흔히 오늘날 담배의 형태로 알고 있는 관련 담배의 제조 기술 향상으로 원료 잎담배의 수요량이 감소됨으로써 국내 잎담배 생산 기지에는 재고가 누적되기 시작했는데요.

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인식으로 담배 산업에 차질을 빚은 것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주요 담배 소비국이던 미국의 담배 소비량은 확산되는 금연 운동의 여파로 1981년 6,300억 개비에서 1984년 5,900억 개비로 연평균 2~3%의 감소 추세를 보였고, 이는 미국 담배 시장의 78%를 점유하고 있던 세계의 담배 재벌그룹에 큰 타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불똥이 우리나라에도 튀게 되는데요.


담배 소비 감소 추세가 이어지자 그동안 외국산 담배 시장을 폐쇄하고 있는 한국, 일본, 대만 시장 등 아시아 시장을 노리며 시장 개방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 결과 1986년 9월 1일 우리나라는 담배 시장을 개방할 수밖에 없었죠.

외국 담배 수입은 당분간 국내 시장의 1% 수준으로 제한키로 했으나 장기적으로는 국산 담배와 외국산 담배가 품질은 물론 가격, 판매망, 서비스 등 모든 방면에서 극심한 경쟁 상황에 놓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그동안 국가 주도로 운영해오던 전매청을 공기업으로 전환하기로 결심, 1987년 4월 1일 한국전매공사를 출범시키게 되는데요.

이는 시장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자유로운 운영과 동시에 담배와 인삼 산업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효율적인 경영 구조를 갖추기 위한 결단이었죠.

이후 한국전매공사는 제조 담배의 고급화 추세 및 수입 개방에 대처하기 위한 연초 연구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앞으로 시장이 개방되면서 예상되는 담뱃잎 원료의 종자 전쟁에 대처하기 위한 처세였는데요.

연초 연구 개발은 품종 육성 및 보급 종자 태화 방지를 위한 종자 갱신 체계 확립, 육종 기술 개발 등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추진되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 제조 담배는 대부분 미국형 담배로 옆배합이 설계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타르 함유량이 다양한 외국산 제품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나라 담배 역시 타르를 다양화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는데요.

그 결과 1980년대 들어서는 팽화엽을 원료로 배합한 담배, 솔, 저타르 제품인 순환 태양, 국내 최초로 탄소 필터가 부착된 은하수 등 다양한 신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애연가들의 큰 사랑을 받게 됩니다.

이후로도 88 패밀리 브랜드를 비롯하여 솔 시리즈 도라지, 백자, 한라산, 라일락, 디스 오마샤리프 등의 신제품들을 꾸준히 선보이며 외국산 담배 시장 확대를 최대한 방어하고자 노력했죠.


그 결과 한국담배인삼공사는 출범 1년 만인 1987년 149억 원의 당기 순이익을 달성, 이듬해인 1988년에는 547억 원을, 1989년에는 1260억 원의 당기 순이익을 달성하며 공기업으로의 경영 체제 전환이 틀린 선택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와 더욱 심화된 외국산 담배의 국내 시장 확대와 그로 인한 시장 경쟁의 격화가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게다가 제품의 다양성으로 점점 더 소비자들의 담배 품질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이제는 고객의 관점에서 더 높은 품질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요.

이와 같은 시대적 요청에 따라 한국담배인삼공사는 품질 경쟁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담배로서는 세계 최초로 1995년부터 ISO 인증 시스템 도입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국산 담배가 세계적인 품질에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당당히 입증해 보일 수 있었죠.


게다가 담배업계 최초로 품질실명제를 도입해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의 담뱃값 밑면에 생산 일자와 제조자 이름을 직접 표기했습니다.

생산자가 자신이 만든 제품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동시에 소비자에게는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걸 동시에 입증해 보일 수 있는 수단이었죠.

이 여세를 몰아 1996년 한국담배인삼공사는 보다 적극적인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경영 효율성을 위해 민영화를 준비하게 되는데요.

1999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되며 민영 기업으로서의 첫발을 내딛은 이후로 2002년 마침내 완전한 민영 기업으로 전환한 한국담배인삼공사는 KT & G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새 비전을 선포하게 됩니다.

KT & G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연구개발 투자 강화, 혁신적 제품 개발 사업 다각화 등 다양한 전략을 추구하게 되는데요.


가장 주력 사업 모델인 담배 제품의 품질 향상과 신제품 개발을 위한 RND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또 담배 산업 외에도 홍삼, 제약, 바이오, 헬스앤 뷰티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데요.

특히 홍삼사업은 2002년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를 통해 정관장 브랜드를 운영하며 주요 사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게다가 꾸준히 제약 및 바이오 분야에서도 신약 개발과 바이오 기술 상용화를 목표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 중인 KT & G는 사회적 책임 이행에도 적극적으로 임하며 친환경 소재 등 기술 개발을 통한 친환경 경영 실천을 위해서도 노력 중이라고 합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지역사회 기업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KT & G는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으며 동시에 사회공헌 대표 기업으로서 PCP 가치 체계를 바탕으로 상상플래닛, 상상유니브, 상상마당 등의 국내 최고 수준의 사회책임 사업을 전개 중입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KT & G는 민영화 이후 국내 담배 사업의 압도적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2002년 전체 매출액 2조 306억 원 돌파, 2023년 기준 전체 매출액 5조 8,626억 원을 기록하며 글로벌 5위의 담배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국 esg 기준원 2023년 지배구조 최우수 기업 수사 MSCI aa 등급을 받는 등 세계적인 담배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다지는 중인데요.

앞으로도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다양한 포트폴리오로 사업 다각화하여 글로벌 탑티어 기업으로서의 비전을 실현해 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담배산업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중요한 원동력으로 자리 잡아왔습니다.

KT & G는 그런 국내 담배 산업의 역사를 이어오며 우리나라 전체 농림축산식품 수출품 중 1위 품목으로 오늘날에도 안정적인 세수 확보와 일자리 창출로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전 세계 담배시장 개방국 중 자국시장 점유율 약 60%를 유지하는 유일한 민영 기업으로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KT & G의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하며 이상 우리나라 담배 산업의 변천사와 KT & G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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